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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Nov 18. 2023

왜 글을 쓰려 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봤는가?

기록, 인간의 욕망


기록은 인간의 욕망,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행위 중 하나다. 선사 시대 인간도 기록을 남겼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의 구석기시대 벽화


현대 인간, 웬만하면 글을 읽을 줄 알고 쓸 줄 안다. 이것,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2-300년 안에 이뤄진 것이다. 학교와 교육의 보급이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다.


많은 이들이 글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글을 쓰기를 원한다. 자연스러운 욕망이자 수순이다. 아직 문자가 존재하지 않던 시기에도 무언가 그리고 끄적거림으로써 기록을 남기고자 했던 종이 인간이니 말이다.


작가가 되기를 열망하는 시대


나도 이 책을 쓰려 이런저런 글쓰기 책을 훑어 보았다.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가. 글을 잘쓰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각 작가가 자기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를 다뤘는데 그중엔 쓸 만한 것도 있었고 시답지 않은 내용도 많았다.



나는 이제껏 두 권의 책을 출간했고 6-7편의 장편을 집필했다. 단편도 10편 이상 썼다. 소설은 아직 빛을 보진 못했으나 두 권의 사회비평서를 내면서 글 좀 쓴다는 평가는 들었다. 20년 간 책을 읽고 썼으니 부족하나마 글쓰기 세상이란 곳에서 놀고 먹은 만큼 나 나름대로 느끼는 바, 깨닫게 된 바 적지 않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게도 된 것이리라.


나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젊은이들, 유소년기 아이들에게 글을 반드시 쓰라고 권한다. 글이든 말이든 이것은 생각의 결과물이자 생각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형식의 산물이다. 글과 말, 생각은 큰 바다를 공유하는 강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달리 흐르지만 결국 바다로 모이고 또 자기 길을 흐른다. 이는 순환하고 모이며 다시 흩어지는 것이다. 어느 것 한 가지가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이고 교류하며 또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인 것이다.


즉 좋은 글이란 좋은 말과 다르지 않고 이는 좋은 생각에서 비롯된다. 말이 많은 자가 글을 잘쓸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둘은 다르며 또 다른 차원에서 글을 잘 쓰는 자는 잘 말할 확률이 높고 잘 말하는 사람은 생각이 바르고 생각의 양이 많을 확률이 높다.


내가 후세대를 향해 글을 쓰라 권하는 것은 달리 말해 생각을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읽으며 또한 말을 잘 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말과 통한다. 이것들은 순환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며 이러한 과정을 충실히 하게 된다는 것은 지력과 지성, 나아가 통찰에 이르는 긴 여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적인 인간이 돼라, 통찰력을 가지도록 힘쓰라, 라는 말이 곧 작가가 돼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다른 층위의 이야기다. 내가 후대를 향해 글을 쓰라고 하는 것은 가치의 정립, 정보의 올바른 축적, 통찰력 등의 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작가가 되라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작가는 아무도 하지 않은 말, 타인에게 의미있고 가치 있는 것을 기록하는 자여야 하며, 남이 이미 한 이야기를 중언부언하는 것은 쓰레기를 양산하는 것 외에 아무 의미가 없다.


모든 이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 모든 이가 책을 써야 한다는 것, 모든 이가 출판을 한다는 것에 나는 반대한다. 우선은 그럴 필요가 없다. 세상은 글을 잘 쓰고 독자를 감동시키거나 지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줄 실력있는 작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 엄밀히 말해 단지 기록, 그저 개인이 끄적거리는 수준의 글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이는 모든 영역이 마찬가지다. 훌륭한 교사, 훌륭한 의사, 훌륭한 법조인, 훌륭한 정치인이 필요한 것이지 그저그런 노력으로 그저그런 실력을 가진 사람이 간절히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이든.





비유하자면, 운동은 모든 인간에게 바람직한 것이지만 모든 이가 올림픽에 나갈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70억 명이 모두 올림픽에 나간다면 그런 광경은 봐 주기 힘들 뿐더러 올림픽이란 진정한 맛을 떨어뜨릴 것이다. 최고의 실력자들이 겨룰 때 올림픽이란 기획의 의미가 있다. 그저그런 실력이라면 구나 시 대회 정도 나가서 실력을 겨루는 편이 낫다. 관중은 적고 대회 규모는 소박하더라도 그 무대가 훨씬 그들에게 적합한 것이다.


인간이라면, 글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논리적이고, 또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작가가 되는 일, 글을 쓰는 것을 직업 삼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서점이 그저그런 책으로 공간을 낭비해야 할 필요는 없다.






서점이란 그런 점에서 독특한 장소다. 그저그런 실력의 작가란 사람들이 책을 내놓을 수 있고 또 그저그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올림픽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00미터를 18초에 달리는 그저그런 실력을 지닌 러너가 100미터를 9초대에 주파하는 최고 실력의 소유자를 이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그런 실력자는 그저그런 순위에 오르는 게 순리에 맞다.


그러나 책의 세계는 다르다. 그저그런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독자들이 손에 쥐고 읽어볼 만한 가치 있는 책이 독자의 눈에 띄지 못한 채 구석에 먼지를 쓰고 방치되기도 한다.


잘 팔리는 책이 곧 좋은 책은 아니다.


반대로 좋은 책이 잘 안 팔릴 수도 있다.


그러니 판매량과 퀄리티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나는 개인적으로 작가가 되기를 열망하는 모든 이가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마치 자신이 노래를 무척 잘한다고 생각하는 자아도취형 싱어가 모두 자신이 가수가 되어야 한다고 필사적으로 확신하는 상황과 같다. 자신은 나훈아나 조용필, 이소라, 이승철쯤 되는 실력이라고 굳건히 믿는, 그러나 실제로는 보통 실력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의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작가가 된다는 것, 자신이 작가인지 냉정하게 물어야


그러니 우선은 자신의 실력을 냉정하게, 객관적인 대상으로 놓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할 줄 아는 것, 이것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세상에는 이 능력을 갖춘 자가 그리 많지 않다.


1. 나는 나 자신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가?

2. 나는 반드시 작가가 되어야만 하는가? 내가 작가가 되었을 때 이 세상은 나로 인해 무엇을 얻게 되는가?

3. 내가 쓰는 글은 독창성이 있고 독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글인가?



작가가 되고자 하는 자라면 우선은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어디에서도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다, 이것만 하면 작가가 된다, 하는 말만 잔뜩 늘어놓으며 희망고문을 할 뿐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아무나 작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마찬가지로 아무나 의사가 되거나 아무나 정치인이 되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내가 쓴 책이 어느 서점에 전시됨으로써 그 서점이 가치 있게 빛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꼭 책을 출간해야 한다. 그는 이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작가다.


그러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책을 쓰는 수준의 작가라면 굳이 이 세계에 발을 들일 필요는 없다. 그는 기록에 만족하면서 그 기록을 통해 다른 업적, 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개인의 측면에서, 사회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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