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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Nov 27. 2023

좋은 에세이 문장은 어떻게 쓰는가? -묵혀뒀다 다시써라

에세이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을 적는 것(구글 인용)이다. 그만큼 에세이는 글쓴이의 캐릭터, 심상, 글쓴이만의 색이 잘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 에세이의 맛이 산다. 개인적인 사담, 일기가 아닌 그야말로 읽을 만한 에세이가 되려면 몇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1. 읽어 볼 만한 소재

2. 맛깔나게 표현해내는 솜씨

3. 명확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

4. 적절한 단어의 선택과 좋은 문장

5. 장황함이나 반복이 없는 정제된 구성


브런치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에세이를 보면, 대체로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1. 독자들이 읽어야 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2. 개인만의 색깔, 색채가 없다.

3. 잘 정리되어 있지 않아 내용이 두서없고 장황하다.

4. 글이 정돈되어 있지 않고 산만하다.

5. 글이 될 만한 소재가 결여되어 있고 그저 떠오르는 것을 끄적거린 수준에 그친다.


좋은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문장이어야 하고, 적절한 단어가 사용되어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일 것이다. (에세이에 적합한 좋은 내용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자.)


어떻게 좋은 문장을 쓰는가? 에세이에 사용될 만한 좋은 단어는 어떤 것인가?


좋은 에세이 문장이란 대개 한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여러 번 고치고 다듬을수록 에세이의 퀄리티가 올라간다. 즉 좋은 에세이란 많이 고친 에세이다. 많이 다듬은 에세이가 좋은 에세이가 되는 것이다. 사실 에세이뿐만 아니라 모든 글이 마찬가지다. 글쓰기란 사실 '계속해서 고치기', '계속해서 다듬기'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글을 쓸 땐 단 한번에 완성한다는 생각을 먼저 버려야 한다. 글이란 계속해서 다듬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생각과 느낌이 더 뚜렷해지고 정돈되며 제대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책을 찾아 읽거나 구글 서핑을 하는 것도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보자.


오늘 교회에 갔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빈 자리가 듬성듬성 보였다. 목사님이 단상에 올라 말씀을 이어가셨다. 공기는 차가웠다. 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 했는데 잠이 오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설교를 듣는데 졸음이 쏟아졌다. 아, 자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먹을 쥐었다가 손바닥을 펴는 동작을 반복하며 졸음을 쫓았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 설교는 왜 이리 긴가?


이것은 그아말로 초고다. 오늘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그저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본 것에 불과하다. 대개 모든 글의 초고는 이 정도 수준이어도 괜찮다. 왜냐하면 머릿속엔 100정도의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해도 막상 글을 쓰고자 하면 종이 위에 그대로 100이 옮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은 5나 10 정도만 꺼내야 한다. 생각나는 대로 줄줄 적어보는 것이다. 초고는 거칠고 정리되어 있지 않는 게 보통이고 단어나 문장이 툭툭 던져지는 느낌으로 가는 것이 좋다. 


자, 이 글에는 그저 교회에 가 설교 말씀을 듣다 졸렸다는 내용이 전부다. 있었던 일을 끄적거린 수준이다. 여기엔 어떤 의미도 맛도 색도 없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자, 이렇게 적어 놓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시간을 두라. 김장김치를 땅 속에 묻듯이, 충분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생각도 무르익기 마련이다. 내가 원래 말하고자 했던 100에서 50 정도는 꺼내놓을 단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치면 된다.

자, 고쳐 쓰기 단계는 많이 거칠수록 좋은 에세이가 나온다. 고쳐쓸 때마다 단조로운 문장을 다듬어야 한다. 적절한 단어를 사용해 본인이 느낀 것을 좀 더 심층적으로 나타내야 한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즉, 그저그런 문장을 좀 더 나은 문장, 의미있는 문장, 잘쓴 문장으로 다듬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수정을 해 보자.


찬 겨울, 교회는 더 아름답다. 아침 일찍, 옷을 차려입고 교회에 갔다. 교회 가는 길, 지나가는 숲에서 새가 지저귀고 하늘은 티 없이 맑았다. 나는 아직 사람들이 오기 전 이른 시간 교회 계단을 밟는 것을 좋아한다.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위를 쳐다보곤 깜짝 놀랐다. 교회 지붕에 밤사이 내린 흰 눈이 덮여 있지 않은가? 왠지 쓸쓸하고 깨끗한 느낌인 것이 마음 구석까지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예배당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빈 자리가 듬성듬성 보였다. 예정된 시간이 되었을 때 목사님이 단상에 올라 말씀을 시작했다. 예배당 공기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이내 몸이 떨렸다.


초고보다 내용이 좀 더 구체적이고 묘사도 조금 풍부해졌다. 자, 여기서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교회에 가서 어쨌다는 건지, 가 빠져 있다. 생각이 안 나는가? 그러면 다시 묵혀 두자.






자,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겨울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도 보았다. 그럼 다시 글을 써 보자.


작가이자 박물학자인 헨리 베스톤은 말했다. '낙엽이 지고, 바람이 분다. 그리고 농촌은 서서히 여름 면옷에서 겨울 털옷으로 갈아입는다.' 헨리 베스톤이 찬미한 그 계절,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나는 아침 일찍, 옷을 차려입고 교회에 간다. 교회 가는 길, 지나가는 숲에서 새가 지저귀고 하늘은 티 없이 맑았다. 젖은 땅 위엔 낙옆이 쌓여 있고 바람이 불었다. 내가 농촌에 살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더디 흐르기 때문이다. 나는 온전히 이 겨울을 만끽하고 감상할 수 있다는 데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겨울 풍경을 감상하며 교회에 도착했다. 문득 위를 쳐다보곤 깜짝 놀랐다. 교회 지붕에 밤사이 내린 흰 눈이 덮여 있지 않은가? 그 광경에 가슴 속까지 따뜻해짐을 느꼈다.
나는 아직 사람들이 오기 전 이른 시간 교회 계단을 밟는 것을 좋아한다. 입김을 뿜으며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 저 아래 눈 덮인 광활한 들판을 볼 수 있다. 이 아침, 신은 내게 저 풍경을 선물로 준 것이리라. 예배당엔 아직 사람이 많지 않았고, 빈 자리가 듬성듬성 보였다. 예정된 시간이 되었을 때 목사님이 단상에 올라 말씀을 시작했다. 예배당 공기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이내 몸이 떨렸다. 슬슬 잠이 몰려왔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이 겨울, 나는 교회 안에 있고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겨울처럼, 느긋하게 가을 옷에서 겨울 옷으로 갈아입는 중인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제 글은 좀 더 분명해지고 색깔이 제법 생겼다. 아, 이 사람은 겨울을 좋아하는구나, 이래서 겨울을 좋아하는구나, 농촌에서 겨울을 맞는 것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글쓴이의 생각을 읽을 많나 포인트가 생겼다. 동시에 이 글을 쓴 이유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나는 대로 끄집어낸 초고는 묵히는 과정, 다시 고쳐쓰는 과정, 검색하고 찾아보는 과정을 통해 내용이 좀 더 풍성해지고 글쓴이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좋은 글은 그만큼 품을 들여야 한다. 조각가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찰흙 덩어리를 계속 매만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글 역시도 계속해서 매만져야 한다. 살을 붙이고 뺄 것을 빼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읽고 싶도록 만드는 글이어야 한다. 의미와 흥미, 감동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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