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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에게 책 추천을 하지 않는다

by 김정은

웬만하면 안 한다, 책 추천하기. 페이스북에 보면 가끔 이런 게 나온다.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세 권, 혹은 부자들이 다 읽어다는 그 책, 당신이 성공하려면 꼭 봐야 할 도서... . 생각이야 자유이나, 이것들, 다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왜 책을 추천하지 않을까?


물론 아주 가끔은 싫어도 해야 할 때가 있긴 하다. 예를 들면 어떤 동생이 다가와 묻는다.


선배, 제가 지금 이러이러한 상황인데 도움이 될 만한 책 좀 소개해 주시면 안 돼요?


되지. 나,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경우엔 어렵게 어렵게 추천을 해 준다. 세상에 '네버'(never)는 없지 않은가? 살다 보면, 실헝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 그러나 웬만해서는 추천, 안 한다.



DALL·E 2023-11-24 11.58.01 - A cozy bookstore filled with stacks of books. The shelves are made of dark wood, crammed with books of various sizes and colors. In the center, there'.png


나에게 책 추천이란 마치 위대한 인간 추천, 아름다운 장소 추천, 맛있는 음식 추천 같은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몇 배 더 어려운 일이다. 위대한 인간, 이름을 대자면 어디 한두 명인가? 아름다운 장소를 대 봐라? 어떻게 몇 군데를 댈 수 있는가? 나는 파리를 좋아하지만 파리 안에서도 아름다운 장소는 한두 군데가 아니다. 맛있는 음식? 그거, 몇 가지만 꼽기 어렵다. 나, 미식가라서 웬만한 건 다 잘먹고 좋아하는 음식이 끝도 없이 많다. 김치찌개라고 해도, 종류가 한두 가지인가?


그래도 맛있는 음식 추천 정도는 그렇게 고역은 아니다. 대충 대면 되니까. 그런데 책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신작이 있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전이 있다. 그 사이에 무수한 책들이 줄 서 있다. 종류로 따지자면 문학부터 철학, 역사, 에세이... 또 문학 안에서도 유럽 문학, 미국 문학, 일본 문학, 또 유럽 문학 안에서도 영국문학이 다르고 독일문학이 다르다.


단순히 숫자가 많다고 해서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길의 문제다. 삶의 문제다. 의미의 문제다. 우리 각자는 저마다의 항로를 헤엄쳐 왔다. 삶이란 각자의 항로를 거쳐 긴 시간 동안 이어 온 여정과 같다. 그러니, 각자의 길은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책은 그 안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DALL·E 2023-11-24 12.01.15 - A picturesque path with a wooden signpost at a fork in the road. The signpost has multiple arrows pointing in different directions, each labeled with .png



이제껏 온 항로 중에 몇 가지 추천해 줄 수 있어?


나에게 책 추천이란 이런 질문과 유사한 것이다.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다 기억하니? 굳이 말하자면 태어나서 오늘 이 순간까지 모든 여정이 기억에 남고 소중해, 라고 답하겠지.


나, 그래서 웬만하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그냥 네 스타일 대로 한 권씩 읽어 봐, 라고 말한다. 아니면 서점에 가서 몇 시간이고 보내 봐, 라고 말한다. 몇 권 마음에 드는 것 주문해서 쌓아놓고 읽어 봐, 라고 말한다. 이 말, 듣는 이 입장에서는 황당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쉽게 풀이하자면 이 말, 이런 뜻이다.


너만의 길을 가. 내 길 궁금해 하지 말고.


성공을 부르는 책 5권. 반드시 읽어야 할 책 10권, 이런 말을 듣고 있자면 솔직히 좀 웃기다. 그 책 읽으면 물론 좋기야 하겠지. 그런데 정말 성공을 부르나? 그 책 읽으면 반드시 무슨 묘안이 생기나? 그런 것 없다. 인생, 그렇게 만만하고 쉽지 않다.


그러니,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지 말자. 누구나 자신의 여정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은 고통이다. 내가 아는 한 이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다. 쉬운 길, 지름길, 그런 거 근본적으로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행운이야 있을 수 있고 횡재 같은 것,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삶이란 그 누구에게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행운은 그 과정에서 잠시 내리쬐는 빛 같은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밤이 온다.


예를 들어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라고 누가 묻는다면 그건 말할 수 있다.


정말 좋은 책이지. 감동 그 자체지. 그 책을 읽고 있자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 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 질문은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DALL·E 2023-11-24 12.02.36 - A traveler in a mysterious, foreign city. The traveler is a young African descent woman with short curly hair, wearing a light blue backpack, a white .png



책은 여행과 흡사한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일본여행 10선' 따위의 말이다. 지가 뭔데 열 개를 골라? 심지어 그런 걸 찾아다니는 이가 있다. 일본이 얼마나 넓고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 10선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제대로 알려면 품을 들여야 한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자신을 끌어당기는 무엇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한 주체적인 선택이 쌓여야 자기 길이 된다. 남이 골라놓은 것을 표지 삼아 따라다니다간 길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다.


책이 읽고 싶다면, 서점에 가라. 그리고 시간을 낭비하라. 충분히 그렇게 한다면 손에 들린 책 몇 권이 생기리라. 그것을 읽어라. 그러고 나면, 그 다음 여정이 생긴다. 그게 순서이고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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