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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비위 맞추는 일이 어렵지 않다

by 김정은

슬하에 두 명의 딸이 있다. 우리집만 유독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 두 녀석 유난히 다르다. 첫째는 고집형 자기주의자다. 자존심이 세고 타인의 비매너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다. 쉽게 상처받고 그 상처에서 벗어나는 데 취약하다. 그래서 한번 타인에 의해 상처받으면 그 아픔이 무척 오래 간다. 둘째? 이 녀석은 첫째와는 완전히 다르다. 자유형 개인주의자다. 둘째는 첫째와 달리 고집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상처도 잘 받지 않는 편이다. 무던하고 타인의 행위에 너그럽고 관용적이다. 이 녀석에게는 자기 영역이란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거의 모든 것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공유하며 자기 물건도 쉽게 내어준다. 그래서 타인과 쉽게 관계를 맺는 편이고 헤어질 때도 쿨하다.


그런데 이 둘이 만나면 기묘한 긴장이 만들어진다. 우선 첫째는 자기 고집 대로 둘째를 요리하려 든다. 물건을 똑바로 정리해라, 숙제를 먼저 끝내놓아라, 머리를 감아라, 천천히 씹으며 먹어라, 혀를 잘 닦아라, 운동화를 꺾어 신지 말아라, 손톱을 물어뜯지 말아라... 등 간섭과 개입이 끝이 없다. 엄마, 아빠는 사실 둘째 애를 내놓고 키우는 편인데 오히려 첫째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둘째는 신기하게도 첫째의 개입을 쿨하게 받아들인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대체로 하지 않는다. 물론 가끔은 언니 말을 거역하거나 조건을 붙이거나 맞서 논쟁할 때도 있으나 그런 경우는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둘 간에 싸움이 벌어지는 날은 전쟁이다. 아내도 나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두 딸래미 간에 벌어지는 내전은 쉽게 평화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약이야, 그게 이 두 녀석을 오랫동안 키우며 내가 얻은 지혜다.



DALL·E 2023-11-24 08.21.13 - Two young girls, around 8 and 10 years old, joyfully laughing in a sunny park. The older girl is of Middle-Eastern descent with curly black hair, wear.png



성격이 완전히 다르고 성향이 다르다 보니 이 둘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첫째는 예민하기 때문에 절대 말실수를 하면 안 된다. 한 번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을 때가 있다. 첫째가 토라지면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첫째를 대할 때 정신을 집중하고 단어도 신중하게 고른다. 첫째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존중과 사랑이다. 그리고 무조건 편들기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첫째가 친구와의 사이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거나 집에서 동생과 문제가 생겨 나에게 상의할 때, 그때가 기회다. 무조건 첫째 딸래미 입장에서 상대를 비판한다. 나, 이거, 꽤 잘한다.


그런 일이 있었니? 완전히 비매너네. 이야, 이건 뭐 교양이라곤 찾아볼 수 없네. 활리, 정말 속상했겠다. 우리 딸, 지금도 화가 안 풀리니? 아빠라도 그럴 것 같아... .


이런 식이다. 캬, 이것 꽤 잘 통한다. 내 아내는 이걸 못 한다. 어설프게 조언을 하거나 지나치게 중립적으로 말하다가 첫째 속을 뒤집어놓는다. 이렇게 쉬운 걸, 왜 못 하지? 아내 때문에 더 화가 난 첫째는 반드시 내 서재로 들어와 나를 찾는다. 나, 첫째를 슬슬 달래고 포옹해 주고 ... 그리고? 맞다, 점수를 딴다.


역시, 아빠는 내 마음을 잘 알아.


이런 말 들을 때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그럼 둘째는 어떻게 할까? 둘째? 걔는 편하다. 워낙 무디고 무던하고 너그럽고 개방적이어서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표정을 짓든 상관 안 한다. 그래서, 아주아주 이지고잉이다. 둘째는 마치 오래된 친구 같다. 서로 막말을 할 수 있고, 농담도 아무렇게나 던지고 웃고 깔깔거릴 수 있다. 사내아이 같고 털털하다. 물론 아주아주 가끔식 토라질 때가 없지는 않은데 이 녀석, 회복도 빠른 편이다. 적당히 시간을 흘려 보내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면 다시 안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성격도 성향도 기질도 제각각이다. 내 아이를 키워 보니 더 절절하게 깨닫게 된다. 흔히 성격을 바꾼다고 하는데 그거 다 헛소리다. 이거, 타고난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예의범절, 타인 존중, 관계 맺기, 사회성, 자존감, 책임감 같은 것이다. 자신이 타고난 바탕 위에 이러한 것들을 덧입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타고난 사람은 많지 않다. 즉 학습하고 훈련받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부모의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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