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실 바깥 의자에 홀로 앉아 있다. 맥주를 두어 캔 정도 마셔 취한 상태다. 그런 상태로 뭘 하고 있는 걸까? 때로 나는 동급생들보다 나이가 서너 살 많은 학생이었다가 또 때론 같은 나이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계속해서 수업을 듣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첫 수업 시간부터 듣지 않았다는 것이 떠오른다. 나는 줄곧 교실 바깥의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무언가를 혼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종이 울리고, 저쪽에서 한 무리의 선생들이 수업을 하려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순간 생각한다. 교실로 들어가야 하나? 내 자리, 교실에서 맨 앞자리는 내 가방이 놓여 있을 뿐 하루 종일 비어 있었으리라. 아무도 뭐라 하는 이가 없었다.
빨리 들어와. 수업이야.
이런 말을 해 주는 친구, 선생은 없었다. 나는 자리를 비운 채 밖에 있어도 제지받지 않는 학생이다. 멀리 잠자고 있던 기억, 사실이 새삼 머리를 찌른다. 나는 물리학, 생물학, 화학 수업을 몇 달째 빼먹었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내가 배우는 영어는 고급영어로 단어가. 단어의 수준이 만만하지 않다. 내가 알기로, 시험까지 내게 남은 시간은 한 달도 채 안 된다. 나는 할 일이 많다. 그런데다 이 과목을 순전히 독학으로 따라잡으려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내야 한다. 아니, 불가능하다.
나는 좌절 비슷한 것에 빠진다. 할 것은 너무 많은 데다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 그 기분은 나를 지옥으로 이끈다. 이보다 더 큰 나락은 없으리라. 나는 어쩌다 이런 상태에 빠지게 되었을까. 모든 것이 나의 태만, 게으름, 그리고 아무 대책 없는 낭만주의로부터 비롯되었다.
교실 안에 있는 학생들은 제대로 된 길을 간 이들이고 나는 아니다. 나는 그들과 비교하면, 나쁜 학생이다. 수업을 빼 먹고 제멋대로인, 그래서 시험 준비가 안 된 불량 학생이다.
선생들이 내가 있는 곳 가까이까지 다가왔고 그들의 말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다. 교실로 들어갈까, 어떡하지? 어차피 수업은 1교시부터 빠졌고, 지금 들어간다고 해서 묘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나는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내 차에 올라탔다. 나는 차를 몰고 술에 취한 채로 달린다. 거대한 건축물 공사 현장이 눈앞에 있고 나는 모래바람 사이를 가로지른다. 언덕길을 오르자 아주 높은 곳에서 저 아래로 급하강 하게끔 되어 있는 두어 개의 길이 앞에 있었다. 한쪽은 낭떠러지 같이 깎아지른 듯한 길인데 길이 중간에 끊겨 있고 다른 한쪽은 마찬가지로 낭떠러지에 요철이 높아 위에서 보기엔 차가 뒤집어질 것 같다.
나는 차를 돌려 반대편 내리막길로 가는데 거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리로는 못 가요!
남자가 말한다.
아주 좁은 비탈길 위에서 나는 간신히 차를 돌린다. 자칫 잘못하면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이다. 나는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꿈은 거기에서 끝났다.
늘 비슷한 꿈이다. 나는 나이가 많은 늦깍이 학생이거나 아니면 제 나이의 학생이다. 내가 뒤쳐져 있는 과목은 언제나 물리학, 생물학, 화학이다. 시험이 있고, 나는 수업을 전부 빼먹은 터라 독학으로 시험을 쳐야만 한다. 나는 조급하고 불안하며 두렵다. 단지 시험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마치 내 긴 인생의 전조, 혹은 단편, 상징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뒤쳐지고, 무언가를 빼먹은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가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나는 괴롭다.
이 꿈의 의미가 뭘까. 왜 언제나 교실일까. 고등학생. 화학, 물리학... .
오늘도 같은 꿈을 꾸었다. 기묘하게 이 꿈이 이어진다.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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