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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주는 고통, 타인이 내게 가하는 고통

by 김정은

인간만이 타자에게 고통을 준다. 그 어떤 생물도 단지 고통을 위해 타자를 괴롭히지 않는다. 사자나 맹수의 사냥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본능적 행위이지 고통을 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런 점에서, 타자를 학대하고 벌주기 위해 고통을 가한다는 측면에서 지구상 유일한 종이다.


사지를 찢는 기구, 잠을 잘 수 없도록 고안된 틀, 살을 지지는 고문은 인간만이 만들 수 있다. 그것들을 상상하고 머리 바깥으로 꺼내 손으로 직접 제작한 이가 바로 인간이다. 수만 명을 한번에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살상 무기도 인간이 만들었다. 미시적인 세계 안으로 들어가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 속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인간이 지금도 열심히 타인을 괴롭히고 있는지 상상해 봤는가? 어떤 이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우리사회는 고통이란 기준으로 보면 최악의 공동체다.



DALL·E 2023-11-29 16.07.22 - An ancient Roman battlefield scene. The image showcases Roman soldiers in traditional armor and helmets, engaged in battle with swords and shields. Th.png



성경의 창세기엔 혼돈 가운데 하나님이 질서를 만들고 최초의 인간이 선과 악을 구별하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이 금지한 열매를 먹고 나아가 아담에게도 열매를 먹게 한다. 뱀이 하와를, 그리고 하와가 아담을 새로운 혼돈으로 이끈 것이다.


나아가 성경의 창세기엔 인간에게 도덕성이란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음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의식을 가진다. 자아를 안다는 것은 곧 타인을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예수는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하는데 이는 곧 고통과도 연결된다. 타인에게 학대를 가하고 타인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예수가 말한 것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성경 속 수많은 이야기에서도 읽을 수 있고 역사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악한 본성을 억누르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인간이 얼마나 많은 인간을 죽이고 괴롭히고 고문하고 때리고 모함했는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에 저항하는 힘, 즉 평화와 존중, 법질서와 도덕은 계속해서 진화해 왔다. 그 진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언론사에서 20여 년 가까이 일하면서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어떤 인간은 상대방을 벌주기 위해, 상대방을 괴롭게 하기 위해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상대방의 평판을 깎아내리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야 만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이나 어느 역사 속 이야기가 아니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인간, 현대 인간, 그리고 진실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집단 속 인간의 이야기다. 나는 내가 그러한 폭력과 모함, 거짓, 선동을 체험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인간은 정말 사악하구나, 하는 것을 직접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DALL·E 2023-11-29 16.12.52 - A diverse group of colleagues showing respect and teamwork in a professional setting. The group includes a Caucasian woman, an Asian man, a Black woma.png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자 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 있는 인간은 그것만으로도 높은 인격의 소유자다. 사악한 인간 본성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고 자신이 가진 무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그 자체로 숭고하다. 타인을 존중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자, 절대로 타인을 존중할 수 없다. 타인을 학대하고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면 그 죄책감 혹은 부끄러움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자기 자신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자신이 어떤 상태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마음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사악한 본성을 억누른다.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이도록 놔두지 않는 태도는 곧 자기 존중이다. 그러므로 자기 존중이 없는 자, 사악한 본성을 함부로 휘두르는 자다.


자녀에게든, 동료에게든, 부하직원에게든 그런 마음가짐을 실천할 수 있는 자는 많지 않다. 즉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



DALL·E 2023-11-29 16.07.13 - A loving father spending quality time with his daughter. The father, a Black man, is engaged in a playful and affectionate activity with his daughter,.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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