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아이들은 학교에 다녔다.
21세기 아이들은?
세계 최초의 의무교육은 1819년, 프로이센 왕국에서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사회화, 즉 아이들으르 국가에 쓸모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도입되었다. 부분적으로는 아동노동의 필요성이 줄어든 상황에서 아동을 업무 전선에 내보내지 않을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무위키)
20세기의 방식이 21세기에도 그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교육은 법과 정치 만큼이나 가장 늦게 변화하는 영역이다. 그러니 큰 틀에서는 전통적 교육 형태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인간의 믿음은 좀처럼 바뀌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래도 학교는 다녀야지.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 말에 한 표를 던진다. 학교 시스템이 당분간 건재한 것은 이러한 전통의 힘, 더 정확히는 쉽게 변하지 않는 믿음 체계, 허구에 대한 공동의 확신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변화에 민감하고 통찰이 있는 부모라면 이러한 전통 교육 시스템에 대해 부정적이리라. 적어도,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 적합한 맞춤형 교육을 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려 노력할 것이다. 대안은 개인 학습이다. 학교에 보내더라도 자기 학습 비중을 가져가야 하는 것이다.
자기 학습이란 다음의 몇 가지로 구성된다.
1. 자신이 주도하는 학습의 양 늘리기
2. 자신에 대해 알아나가기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에 재능이 있는지 등)
3. 다양한 체험과 경험하기 (독서와 예술, 언어, 여행 등을 통해 소양을 쌓는 것)
학교 - 학원 시스템으로는 버티기 쉽지 않은 시대가 온다
지속적으로 결과물을 내도록 훈련시켜라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한 인간의 삶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곤 했다. 인간은 10만 년 가까이 수렵채집인으로 살았고 1만 년 정도를 농업인 혹은 목축인으로 살았으며 과학기술이 도입되어 산업혁명을 거친 것은 불과 500년도 채 안 되었다. 컴퓨터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AI가 도입되면서 지금 인간의 삶은 혁신을 경험 중이다. 나는 TV를 보고 구슬치기를 하고 유선 전화기를 사용하며 자랐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스마트폰 하나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낸다. 검색, 게임, 놀이, 학습, 이야기가 스마트폰 하나로 다 해결되는 세상이 우리 아이들의 세계다.
자신만의 쓸모와 무기, 차별성과 재능을 발달시키지 못한다면 삶을 주도적으로 개척하고 즐거움과 의미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기술과 정보, 지능과 적응력의 격차에 따른 역량의 격차, 소득의 격차, 부의 격차는 심화될 것이다.
학교 - 학원 병립 구조에 완전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부모라면, 한번쯤 자신의 생각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향후 아이가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날 때 양손에 아무것도 쥔 게 없는 상태나 다름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학 졸업장은 점차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 간판은 그 사람에 대해 알려주는 정보의 양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실제 드러난 결과물, 성과, 그가 만들어낸 작품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재능과 역량의 지속가능성, 사회적 쓸모에 대한 평가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이다. 유년기부터 차근차근 누적된 자신만의 스토리는 개성과 지능 측면에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단체 학습의 비중을 줄이면서 개인 학습 비중을 늘려갈 필요가 있다. 개인의 고유한 재능과 관점, 소질과 기호를 따라가야 한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것은, 미래의 우리 아이들도 바랄 것이다. 즉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이다. 일은 삶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한다. 구직 노마드, 일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는 삶은 나에게나 내 아이에게나 불안하고 피곤한 것이다.
한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 세계와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 문제해결능력. 이것은 20세기에도 그리고 21세기에도 필요한 덕목이다. 더욱이 AI 가 여러 직업을 대체할 새로운 미래엔 이러한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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