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지금 당신은 좋은 퇴직, 훌륭한 퇴직, 바람직한 퇴직을 준비 중인가? 아니면 퇴직에 관해서 걱정만 할 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 이를 단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3가지가 있다.
1. 오늘 당장 하루가 갑자기 주어지면 그대로 실행할 만한 정해진 루틴이 있는가?
2. 10년 주기의 장기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
3. 10년 이상 갈고닦은, 타인과는 차별화된 나만의 무기가 있는가?
자 이 중 2가지 이상 항목에서 Yes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의 퇴직 준비는 훌륭하게 진행 중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여기엔 퇴직 후 매우 중요한 인간관계의 질이나 재정 상태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이 두 가지는 퇴직 후 삶의 질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긴 하나 다른 한편으론 상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3명이어도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얕고 넓은 인간관계를 선호해 20명 이상의 친구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시골 농가를 개조해 살 생각이어서 100만원만 있어도 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시 생활을 선호하기 때문에 최소 250만원의 생활비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나는 이 두 가지, 즉 인간관계와 돈에 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각자 자신의 주관과 성향에 따라 준비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개와 고양이, 늑대의 퇴직
동물 수준의 삶을 원하는가?
누구나 늙는다. 젊을 땐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나 나이들고 몸이 쇠약해지면 할 수 있는 일도 확연히 줄어든다. 젊은 시절, 좋은 직장에 다닌 사람들일수록 퇴직 후엔 더 차갑고 냉정하고 형편없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퇴직 이후 삶을 준비하려면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퇴직을 말할 때 거의 대부분이 인간관계와 돈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본다. 그러한 방식은 그것 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관점에서는 돈과 인간관계 중심으로 퇴직 후 삶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1차적 욕구, 기껏해야 2차적 욕구에 관련된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쁜 퇴직은 아니지만 수준 낮은 퇴직, 그저그런 퇴직, 개와 늑대의 퇴직이라고 부르고 싶다. 왜?
예를 들어 안전의 욕구, 의식주 욕구나 관계의 욕구는 상대적으로 하위 욕구다. 이러한 욕구는 일반적으로 모든 동물 종에게서 확인된다. 즉 개나 고양이, 늑대도 이러한 욕구를 추구하고 만족하려 행동한다는 뜻이다. 개나 고양이도 맛있는 음식을 원하고 안전한 보금자리를 원한다. 만약 인간이 의식주 욕구에 머물러 있다면 개나 고양이, 늑대와 유사한 수준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주의 종이란 차원에서는 그러하다.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으리라. 인간은 자의식이 있고 상상력이 있으며 미래를 내다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혼은 다른 동물보다 복잡하다. 따라서 인간이란 존재에 걸맞은 욕구, 즉 상위 욕구는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그리고 심원하고 깊이 있는 가치와 목표를 추구하는 욕구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은 일찍 준비할수록 좋은 법이다. 옛 성현이나 철학자들이 인간은 늘 죽음을 상기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죽음을 떠올리면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가 도드라진다. 허투루 시간을 흘려보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은 오늘 현재의 시간을 의미있게 써야만 한다는 명제를 깨닫게 한다. 현재를 살아라, 하는 격언은 이러한 의미다.
죽음, 일찍 준비하는 것이 현재 내 삶에 이롭다
질 낮은 퇴직이 아니라 수준 높은 퇴직을 준비하라
유년기를 거쳐 한참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청장년 시기 상위 욕구에 대한 추구가 없었다면, 그가 맞을 노년기는 적어도 동물적 상태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좋다, 나쁘다 가치 판단은 하지 않겠다.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어떤 것이 한 인간의 삶에 더 가치와 보람을 주는지에 관한 문제는 분명하다.
그러니, 나는 청장년 시기부터 자아실현의 욕구, 영성(영혼과 연관된 심원한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의 욕구를 실현하고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권하고 싶다. 이것은 한번 시작하면 점점 더 강화되며 성장한다. 독서를 하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대화와 토론을 하고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는 행위는 이러한 상위 욕구와 연관이 있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탐구하고자 하는 행위이며 세계를 이해하고 타자와 연결되고자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을까?
인간 각자에게 주어진 고유하고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 질문을 회피하고 넘어간다면 남는 것은 언제나 돈 문제뿐이다. 돈, 돈, 돈, 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와 먹고 사는 것만 해결되면 인생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보다 근본적인 존재에 관한 질문을 회피하고 넘어가기를 반복해 온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필연적으로 공허하고 무의미한 덤불을 헤매도록 세팅되어 있다. 심원하고 수준 높은 가치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1차원적 욕구에 충실한 삶이란 단지 동물적 삶일 뿐이며 어떤 의미도 남기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도 좋지 않다. 그런 삶은 그저 한 사람이 왔다가 갔다, 이 한 줄로 정의되는 삶일 뿐이리라. 내 인생이 그저 한 줄로 정의되기를 원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당장 근원적인 질문을 품고 이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한다.
퇴직 준비, 그 시작은 오늘 당장
좋은 퇴직이란 잘 짜여진 루틴으로 보내는 오늘 하루로부터 시작된다.
10년의 장기 목표는 정교한 플랜으로 잘 짜여진 알찬 하루로부터 시작된다. 루틴이 있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시간이 주어져도 별로 할 일이 마땅하지 않다면 자신의 생을 되돌아봐야 한다. 그것은 잘못 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계획이 없다는 의미이고 10년 플랜, 20년 플랜, 평생 플랜이 없다는 의미다. 목적이 없는 삶엔 방향이 없고 방향이 없다면 길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삶은 지루하고 무의미하며 따분하다.
어떤 일이 작든 크든 생산과 소득으로 이어지려면 일정 수준, 일정 퀄리티 이상을 갖춰야 한다. 우리 인간은 각자 타고난 능력이 다르다. 그것을 발견하고 갈고닦는 것은 각자 개인의 몫이다. 안타깝지만 대다수 인간이 그것을 찾지조차 못한 채 관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자신을 찾고 발견하는 것이 첫 번째다. 자신을 찾는 데 있어 늦은 시기란 없다. 지금 당장 시작해도 좋다. 그렇다면 하루 24시간이 얼마나 부족한가, 를 실감하게 되리라. 자신을 찾고 목표를 세운다면 방향이 생기고 다음 스텝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게 된다. 이것은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삶의 원칙이다. 질 높고 바람직한 퇴직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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