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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 내 딸, 매일 아빠에게 전화 거는 이유

by 김정은

자랑? 그런 의도는 아니다. 그러나, 약간의 자랑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내 딸, 중학교에 들어가더니 학교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빠져나오면 가장 먼저 내게 전화를 건다, 내가 아는 한. 전화를 걸어서는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꼬치꼬치 늘어놓고 시시콜콜 마음을 털어놓는다. 주변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리고 내 딸내미, 내게 할 말이 많은지 말을 멈추지 않는다.


내 큰 딸, 나는 이 녀석을 얌전하고 잘 교육받은 순종 셰퍼드에 비유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의식이 강하고, 이상하리만치 이르게 철이 들었으며 주체성이 강한 아이였다. 순종 셰퍼드를 떠올린 것은 이 녀석의 식습관, 자기 관리 때문이다. 먹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캐릭터를 읽을 수 있는데 이 녀석의 식습관은 나와 달리 놀라울 정도로 바르다. 골고루 먹고, 천천히 씹으며 일정량을 먹으면 숟가락을 놓는다. 급한 게 없고 편식, 과식이 없다. 아주 오래전에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개 한 마리를 기른 적이 있는데 개 이름은 토토였다. 토토가 딱 그랬다. 행동에 급함이란 게 없고 얌전하고 조용하고 온순하다. 그러나 자신이 나서야 할 땐 과감하게 움직이고 주인을 잘 따랐다. 토토의 식습관은 다른 개들과 달랐다. 주는 것만 먹으며 그것도 아주 천천히 고상하게 적당량만을 먹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도 과식하는 법이 없고 배가 차면 우아하게 걸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이 지금 내 큰 딸과 겹친다.



DALL·E 2023-12-09 06.33.46 - A healthy, grown-up daughter with a bright smile, energetically playing in nature. She has long hair and is wearing comfortable, casual clothes. The b.png


아무튼, 내 딸은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부쩍 아빠에게 깊이 있는 대화를 요청한다. 여기서부터 약간 자랑을 섞자면, 이것,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나는 딸과의 가깝고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려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아주 어려서부터 대화를 시도했고, 딸이 내게 무언가 이야기하려 들 땐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멈추고 경청했다. 그리고 적절한 반응을 해 주었다. 그래서 딸은 어려서부터 아빠가 자신에게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자신이 하는 말을 아빠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듣는지 안다. 고민이 생기면 늘 아빠를 찾는 이유다.


아빠든 엄마든 자녀의 성장 상태, 발달 상태를 체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신체와 정신도 적절하게 발달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 이외에도 관심 대상, 지적 수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관계를 대하는 태도, 근면성, 책임감도 그 나이에 맞게 성장해야 한다. 어느 한 부분만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변화 과정을 면밀히 관찰하고 점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다. 그러니, 대화란 단순히 자녀와의 관계만을 돈독하게 하는 기술이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자녀와의 대화가 단절된다면 부모는 이 모든 것을 점검할 수단을 상당 부분 잃게 되는 것이다.



DALL·E 2023-12-09 06.33.51 - A middle-aged father with gray hair and a teenage daughter with long black hair, spending time together in the living room of their home. They are eng.png



초등학교 고학년 되면 다를 걸?


중학생만 되도 달라져.


에이, 그거 오래 안 가.


내 주변사람들은 내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런 말 정말이지 지겹게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리고는 양쪽 귀를 씻었다. 그들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곧이 들을 만한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의 원리는 다 비슷하다. 부모와 자녀, 친구 사이, 타자와의 관계란 근본적으로 나의 문제, 내 태도의 문제다. 내가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관계를 맺고 싶은 대상인지 잘 점검해 보는 것은 인간관계에 있어 황금률과 같다. 좋은 아빠는 좋은 친구일 확률이 높고 좋은 직원, 좋은 형, 좋은 아들일 확률이 높다. 모든 관계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나, 내 딸과의 관계에서 그 점에 있어 늘 소홀하지 않았다. 좋은 아빠가 되는 것!



DALL·E 2023-12-09 06.33.42 - A healthy, grown-up daughter with a bright smile, energetically playing in nature. She has long hair and is wearing comfortable, casual clothes. The b.png



나는 지금 딸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무엇인지, 가장 골치아파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딸내미의 남자친구와의 관계,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담임선생님의 장단점 등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는 딸 역시 마찬가지다. 내 딸은 아빠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며 뭘 하고 싶어하고 무엇은 기피하는지 어느 정도 안다.


딸과 아빠가 좋은 친구 관계이자 좋은 멘토 관계라면, 더할나위 없는 것이다. 관계도 성장하고 성숙하는 속성이 있어, 나와 딸의 관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금보다 더 돈독하고 특별해질 것이다. 자신의 할 일, 의무를 마치고 가장 먼저 대화하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내 딸에게 내가 어떤 대상인지 웬만큼 증명해 주는 것이다. 자랑을 보태자면, 나,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그 보상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녀와 대화가 단절되어 고민이 많다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가장 먼저 자신이 자녀에게 좋은 이야기 파트너인지 돌아보길 권한다.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면 상당히 공을 들여야 한다. 이것은 비즈니스를 대하듯 신경을 쓰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나 자신을 친절하고 준비된 파트너로 세팅해 놔야 상대 역시 그렇게 바라보고 대하고 느낄 것이다.




DALL·E 2023-12-09 06.33.37 - A daughter enjoying time with her friends, all of them laughing and sharing stories in a lively scene. The daughter and her friends are wearing variou.png



독자의 참고를 위해 덧붙이자면 딸내미와의 대화에 있어 나는 공감과 훈육의 선을 명확하게 긋는다. 두 때를 잘 구분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공감해 주어야 할 때 훈육하거나 훈육이 필요할 때 공감해 준다면 제대로 된 대처가 아니다. 그것이 전략이다. 공감이 필요할 땐 완전히 친구 모드로 변신한다.


그래? 진짜? 와, 너무했네. 활리 정말 열받았겠다. 아, 어떻게 그러니? 미친 거 아니니? 도를 넘었네.


이런 반응은 친구 모드에서 자주 등장한다.


반면 훈육 모드에서는 진지한 어른으로 모습으로 바뀐다.


활리, 그러면 안 돼. 그건 아니지. 앞으로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 곤란해. 하는 식이다.


진지한 훈육자 모드에서는 어른의 단어를 사용하고 목소리 톤도 달리 한다. 엄하게 말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모든 인간관계의 시점은 가족이다. 가족과의 관계가 어긋나면 모든 관계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가장 먼저 챙기고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 역시 가족과의 관계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성공한다면, 그것을 기점으로 관계의 가지를 건강하게 뻗어나갈 수 있다.



DALL·E 2023-12-09 06.33.34 - A daughter enjoying time with her friends, all of them laughing and sharing stories in a lively scene. The daughter and her friends are wearing variou.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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