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동창 모임을 다녀온 아내가 집에 오자마자 혀를 끌끌 차며 이야기를 전했다.
공무원 하는 그 친구 알지? 회사도 그만둘 생각이래. 아이 때문에.
아이가 왜?
큰 아들내미가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인데 교실에서 허구헌날 치고박고 싸우고 애가 좀 문제가 있나 봐.
그래? 왜 싸우지?
사회성이 부족하고 공감 능력이 없나 봐. 자기가 툭 쳐서 친구가 물건을 떨어뜨려서 깨지면 사과를 해야 되는데 자기가 뭘 잘못한 거냐면서 싸우나봐.
그래? 문제가 있네.
어.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 현장을 목격했는데 보통은 사람 안 다쳤나 하고 놀랄 텐데 얘는... .
얘는?
저 차 때문에 길이 막혀서 우리가 늦게 됐다면서 우리가 손해를 입는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대. 문제 있는 거 아냐?
문제가 크다.
아이의 행동이나 사고를 보면, 조심스럽게 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의심된다. 흔히 소시오패스라 부르는 이것은 주로 후천적으로 발현하는데 방임, 학대, 가정폭력, 따돌림 등에 의해 발생한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4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비교적 많은 이들이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
나는 사람들의 내면 세계도 인식하지 못하고 그들 감정의 색깔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의 밝은 색조는 회색빛 감도는 우중충한 내 음영과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을 자아와 명백한 운명을 지닌 개별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아서일까? 어쩌면 스스로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내게는 어떤 식으로든 보듬거나 고수해야 할 정확한 자아라는 감정이 없다. 내 삶은 대부분 그날그날의 우연한 사건, 반응 체계 없는 충동적인 의사결정의 끊임없는 연속이다. 나와 유전적 성향도 다르고, 나처럼 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사랑을 찾아 공허감을 달래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나는 대체로 냉담하다.
- 실제 소시오패스 진단을 받은 M.E.토머스, <나, 소시오패스> 중 (107p)
그런가 하면 내 형제의 자녀, 그러니까 내 사촌 조카는 자신감이 없고 사회성이 발달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너무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이다. 조카는 지금 대학생이 되었는데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내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삼촌. 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여전히 힘들어요. 왠지 자신감이 없고 무슨 말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아이는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정서적 학대를 받으며 길러졌다. 부모의 절대적인 사랑과 신뢰, 지지를 받지 못했고 대신 엄격한 생활 지도, 자존감을 뒤흔드는 체벌에 장기간 노출되었다.
위 두 경우 모두 나는 아이들의 역습이라고 정의내린다. 부모가 마땅히 자녀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 자녀들에 가져야 할 책임을 다 하지 못했기에 아이들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성격 장애는 낮은 자존감이든, 사회성의 미성숙이든 모두 가정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
부모 교육을 받고 부모가 되는 이는 없다. 그러다 보니, 자시니 성장한 배경에 따라,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자녀를 키운다. 그런데 자녀를 상대한다는 것은 우리 생각보다 까다롭다. 개 한 마리를 제대로 키우는 데에도 앎이 있어야 하고 매뉴얼이 필요한데 하물며 사람의 경우엔 어떻겠는가? 공동체 안에 폭력적인 아이, 반회적 인경장애를 지닌 아이, 사회성이 극도로 낮은 아이, 소심한 아이,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아이가 쉽게 발견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마치 거리에서 공원에서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거칠고 난폭한 개를 자주 만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실 근본적인 책임은 개 주인에게 있다.
정성을 들여 아이와 친밀감과 유대감을 쌓아나가고 전폭적이고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보내는 것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도덕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성 발달에 주목하는 일은 부모가 할 일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바빠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서, 몰라서, 무관심으로 부모가 자신의 책임을 놓치는 것을 본다. 이런 경우에 아이가 별 문제 없이 성장한다면 좋겠지만 뜻하지 않은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곧 아이들의 역습이다.
내가 의사가 아니기에, 이들에게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는 없겠으나 상황을 개선시키고 아이들이 올바른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늦었지만 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신뢰와 유대감을 형성하고 사랑과 지지를 보내고 잘못된 관점과 행동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훈육해야 한다. 문제를 지닌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이 지닌 질환, 덜 발달된 사회성, 낮은 수준의 도덕성, 관계의 어려움 등 때문에 제대로 된 길을 가지 못할 수 있다. 물론 좋은 직업을 갖고 가정을 이루고 집을 살 수는 있겠지만 공동체에 도움이 되고, 자아 실현을 하고 가정을 행복으로 이끄는 사람이 되기는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최소한의 부모 역할을 인지해야 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의 훈육에 대해 1도 모르고 개를 키우면 이웃을 물어뜯고 큰 소리로 짖으며 난폭하게 행동하는 개로 기를 수 있듯이 인간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부모의 역할이고 책임인지 알지 못하면 이를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언젠가 치르게 돼 있다.
아이는 사물이 아니기에 감정을 지니고 있다. 또 언젠가는 부모 품을 떠나 사회로 나간다. 내 아이가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라면, 아이의 삶을 생각해 볼 때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적정한 수준의 사회성과 도덕성, 관계 지능과 정서 지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대체로 부모로부터 훈육되는 것이다.
내 아이가 잘되길 바란다면,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사랑하고 정서적으로 지지하며 아이를 훈육하라.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엄한 목소리로 때론 부드럽게 고쳐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책임을 계속 회피한다면 아이는 역습할 것이다. 나중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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