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시험, 옛날 시험과는 다르구나
시험 자체가 아이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험, 내가 학교 다니던 그 수준의 시험이 아닌 모양이다. 오늘 금요일까지 중1인 큰 딸은 시험을 치른다. 수요일부터 시작된 시험이 3일째 이어지는 것이다.
이틀 전 수요일 저녁, 딸애 방의 벌어진 문틈 사이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무슨 소리인지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깜짝 놀랐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큰 딸애가 자기 머리를 쥐어박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보고도 이 장면, 못 본 척했다. 우선 나 자신이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
내 딸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그날 저녁 딸애는 두통을 호소했다. 머리가 아파, 아빠. 나는 얼른 두통약을 건네주었다. 원래는 두 알을 먹어야 하지만 넌 아직 중학생이니까 한 알만 먹어 봐. 그래도 효과가 있을 거야.
딸애는 약 복용을 거부했다.
안 먹을래.
아니야, 나쁜 거 아니야. 두통은 그대로 두면 더 나빠. 두통을 참아서 좋을 건 없어.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큰 딸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시험이 많이 힘드니?
어.
딸애의 표정만으로도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는지, 힘들어 하는지, 견디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말했다.
아빠가 이야기 하나 해줄게. 아빠가 너 나이 때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때 영어점수 몇 점이었는지 말해줄까?
응.
딸애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이 녀석, 큰 관심을 보인다.
- 중학교 1학년 기말고사 점수, 나이 마흔 넘으면 생각도 안 난단다
나는 말했다.
생각이 안 나.
뭐야?
자신을 놀리는 건가 싶은 건지 딸애가 시큰둥해 한다.
진짜야. 수학 점수? 과학 점수? 그런 거 하나도 생각 안 나.
진짜?
응, 진짜. 그런데 너처럼 머리 쥐어뜯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했던 건 기억 나. 힘들었다는 것, 공부는 잘 안 되는데 그래도 엉덩이 붙이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거, 그런 건 기억이 나.
아...
딸애가 밥맛이 없는지 밥을 뜨는둥 마는둥 한다.
활리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냥 봐. 시험, 지금은 전부인 것 같지만 아빠 나이쯤 되면 점수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 대충 보라는 게 아니라,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너, 열심해 해 왔잖아. 활리도 나중엔 그것만 기억날 거야. 점수는 하나도 기억 못 해. 그러니 마음 편하게 먹고 최선을 다 해 치면 그만이야. 알았지?
응.
딸애는 그날 유독 일찍 잠들었다. 평소 새벽 한두 시나 돼야 잠에 드는 애가 밤 9시쯤 잠에 든 것이다. 아, 걱정을 좀 덜었구나, 싶어 나는 만족스러웠다. 딸애의 방에 들어가 보니, 내가 준 두통약이 먹지 않은 채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정신력, 주체성이 강한 아이다. 그런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기 머리를 쥐어박았을까? 얼마나 머리가 아팠으면... .
- 중고등학교 시험 문제, 어렵게 내서 대체 누가 이익을 보는가?
딸애는 수학점수가 69점, 과학점수는 80점대, 국어점수는 70점대가 나왔다. 괜찮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엔 학원에 안 다니고도, 학교 수업만 듣고도 웬만큼 공부하면 100점을 맞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 학교는 대체 뭘 하는 공간이지? 내 딸애는 내가 대학 시절 공부하던 양에 버금갈 만큼 공부를 했는데도 점수가 잘 안 나오는 걸 보면,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선생들이, 단지 시험을 위한 시험을 내는 건가?
우리나라 대입 수능 시험 수학 문제는 세계적인 수학자들, 내로라하는 수학 석학들도 풀지 못한다. 이것은 놀랍지만 사실이다. 아주 유명한 이야기다.
'당신네 나라는 이런 문제를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내는가? 왜 그러지?"
수능 시험 문제를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수학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 말이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왜 이런 문제를 내는가? 이런 문제를 통해 누가 이익을 보는가?
내 생각에, 세계 최고의 수학자들조차 풀 수 없는 문제를 풀도록 기계적으로 훈련된 소수의 아이들, 그 아이들이 돋보이는 것 말고는 이 미친 문제들의 수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이런 문제들로 애꿎은 아이들을 고문하는가? 왜 다수의 아이들을 패배자로 만드는가?
우리 사회, 문제를 위한 문제를 내는 것, 도가 넘었다. 왜 아이들에게 이렇게 큰 짐을 지우면서, 시험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게 되었을까?
이건 문제가 있다.
- 아이들은 여러 활동을 하며 체험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이 다른 활동을 할 수 없다. 아이들은 운동도 하고, 사회성도 키워야 하고 예술도 경험해야 하고 여행도 가야 하는데, 시험이 이렇게 힘들다면, 다른 활동을 전부 접고 시험만 준비하라는 것일까?
사회가, 학교가 중심을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려면, 부모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 아이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고 건강하게 키우기 위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 시험? 그건 아이의 현재 학습 상태를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서재를 거실로 옮기고 거실에 공동 공부방을 마련하는 중이다. 이제 내가 직접 나서 아이들의 학습을 점검해 주려 한다. 미국의 대입 수능 시험은 수학 과목의 경우 우리나라 중3 수준의 문제가 출제된다. 국어의 경우 에세이가 중요하다. 나는 그 기준에 맞춰서 아이들을 직접 체크하고 학습에 도움을 주려 한다. 가능하다면, 좀 더 많은 가정이 이렇게 하기를 권한다. 단지 학교에 학원에 던져 놓고 알아서 해 봐, 하는 식이라면 어떤 아이도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문제를 위한 문제를 내면서 아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교육당국에 내 아이를 맡길 수는 없다.
인간은 사물이 아니다. 그 인간을 성장시키는 교육은 단순히 점수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의 마음, 감정, 체력, 인간관계 등이 고루 발달해야 한다. 이것, 부모가 직접 챙겨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안타깝지만 내가 인식하는 현실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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