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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 딸이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by 김정은

내 딸애의 남자친구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인 모양이다.


걔, 공부 되게 잘해. 나보다 훨씬.


딸애가 자주 그런 말을 했다. 공부를 잘하는 남자애라고 하니, 아빠로서 왠지 싫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사는 녀석이 여자 보는 눈도 있군. 나, 그렇게 생각했다.


여름에 아이들과 유럽에 휴가를 갔을 때, 딸애는 남자친구로부터 자주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대개는 보고싶다, 뭐 하니, 같은 일상적인 내용이었다. 언제 돌아오니, 돌아오면 어디에서 만나자, 선물을 준비했다, 식의 메시지도 받는 모양이었다.


멀찍이서 지켜 보면 남자애가 딸애를 무척 좋아하고 딸애는 전반적으로 반응이 시큰둥한 편이었다. 딸애를 둔 아빠로서는 그 점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 남자애가 좀 매달려야지. 그런 생각도 했다.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난 후 딸애는 두 번의 큰 시험을 치렀다. 그러는 동안 남자친구로부터 몇 번씩 같이 도서관 가서 공부하자, 는 제안을 받은 모양이다. 그때마다 딸애는 거절했고, 시험이 아니더라도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제안도 지속적으로 거절하는 걸 목격했다.


너, 그래도 한번은 만나줘야 하는 거 아니니?


오죽하면 아내가 큰 딸애에게 그렇게 말할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계속 이유 없이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아내는 말했다.


언젠가는 그만 만나자고 할 거야.


딸애는 내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 언젠가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게 그리 멀지는 않겠구나, 하는 직감을 했다.


그리고 기말고사가 끝난 날, 딸애는 선포했다.


우리, 헤어졌어.


정말? 어떻게?


아내가 깜짝 놀라 묻는다.


뭐라고 했는데?


뭐, 그냥, 그만 하자고 했어. 계속 받기만 하는 것도 미안하고.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딸애는 그저 무심한 태도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한다.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는데, 식탁에 둘러 앉아 딸과 아내가 대화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린다. 딸이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남자가 나를 더 좋아하는 느낌이 어떤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별로인 것 같아.


이 말을 들은 아내, 이렇게 답한다.


그래도 너를 더 사랑해주는 남자가 낫긴 하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글세, 뭐가 더 나은 관계일까. 내가 더 사랑하는 것, 내가 더 사랑받는 것. 어쨌거나 큰 딸애가 이별했다. 벌써 서너 번째 이별이다. 내 딸애, 어린이집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계속 썸을 탔다.


딸애의 다음 남자친구가 누가 될지 이제는 그게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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