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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떡잎 노랗다는 엄마, 엄마를 치유해 주겠다는 딸

by 김정은

맨날 지각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야. 외고 가겠다는 애가 벌써 지각이 몇 번인데. 걔, 외고 못 가.


아내는 말한다.


지각했다고 외고 못 들어가면 일반고 가면 되지.


나는 심드렁하게 말한다.


걔, 공부도 안 해. 완전히 기초가 엉망이야.


아내는 말을 보탠다.


학교 갔다가 학원 갔다가 집에 오면 9시가 넘는데 뭘 더 바라니?


나는 말한다.


새벽 한두 시까지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게 정상이야?


그럼 비정상이니? 몇 시간 자기 시간을 갖는 거는 아주 정상적인 거고, 당연한 거 아니니?


아, 몰라. 떡잎부터 노래. 난 포기했어. 이제부터 나는 걔에 대해 신경 끌 테니까 오빠가 알아서 해.


아내는 두 팔을 들었다.


그래, 넌 손 떼. 그게 좋겠다. 아예 교육에 관해서는 손 대지 마.


나는 내친김에 선을 확실히 그었다.


아마도 그 말에 아내는 서운했을지 모르겠다. 이야기 도중 방문을 쾅 닫고는 나가 버렸으니.



DALL·E 2023-12-20 08.11.49 - A studious young girl, about 12 years old, concentrating on her studies in a classroom setting. She has straight, shoulder-length brown hair and wears.png


모든 인간은 자신의 가치 서열 구조에 따라 세상을 인식한다


아이를 바라볼 때 그 사람의 생각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각 개인이 가치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인다. 그러니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아내는 보통사람들의 기준, 평균적인 생각, 그리고 평균적인 행동을 최우선 가치로 둔 사람이다. 그렇게 커 왔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다. 그러니, 아내의 가치 기준은 평균이란 단어에 있는 것이다.


평균이란 시각에서 볼 때 딸의 행동은 문제가 많아 보일 수 있다. 대한민국 아이들의 평균 생활 패턴에 견주어 본다면 내 딸애는 그저 문제가 있는 아이일 뿐일 테니까.



DALL·E 2023-12-20 08.11.54 - A joyful young girl experiencing a moment of pure happiness. She is about 10 years old, with curly, shoulder-length blonde hair, and bright green eyes.png


자유, 행복감, 유능감, 좋은 관계, 사랑이 내가 우선하는 가치들이다.


반면, 나의 가치 기준은 아내와 상당히 다르다. 나는 교육에 관한 한 인간의 주체성, 고유성, 개성, 자율성을 가장 우선적으로 존중한다. 즉 자유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유에 바탕을 두지 않은 교육은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인간은 온전한 자유 없이는 자신을 발견하기 어렵고 균형감 있게 세계를 탐험할 동력도 잃게 된다. 교육이란, 20세기에 겨우 그 토대를 형성한 교육이란 이런 자유를 침해하도록 세팅되어 있다. 아이들은 의무교육이란 제도 아래에서 하루 7시간 내외를 학교에서 보내도록 강제된다. 연령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15살 이내의 아이들에게는 이 정도의 강제면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고 먹고 씻는 시간, 10시간을 제외하고 7시간 정도를 강제 영역에서 보내야 한다면 남는 시간은 많아야 5-6시간 정도다.


대한민국 부모들은 이 시간마저 강제의 영역에 아이들을 가둬두려 안간힘을 쓴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이 시간을 다시 학원에 보내거나 강제로 공부하도록 억압한다면, 자유라는 가치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부모는 그렇게 해서 행복해질지 몰라도 아이들은 병든다. 자유롭게 숨쉬고 움직이고 놀고 모험하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진 인간이 자유를 온전히 박탈당하면 탈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자유로울 때 행복감을 느끼고 자아와 세계에 대해 탐구하며 관계를 맺는다.



DALL·E 2023-12-20 08.12.00 - A heartwarming scene of a mother and her young daughter sharing a tender moment. The mother, a middle-aged Korean woman with shoulder-length black hai.png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


우리 사회 아이들이 유독 우울한 이유, 부정적 감정에 빠지는 이유, 자살률이 높은 이유, 행복감이나 삶 만족도가 극도로 낮은 이유는 다 이러한 문제에 기인한다.


1. 자유 시간, 자율성이 너무 없다.

2. 마음껏 놀고 운동하고 친구를 사귈 시간이 없다.

3. 자기 개성을 발견할 만한 기회가 없다.

4. 너무 어린 시절부터 성과에 시달린다.(그래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

5. 성적 중심의 교육이란 비교를 근간으로 한다. (인간은 타인과 비교당할 때 가장 우울하다.)


아내와 내가 부딪히는 지점도 결국 자유에 있다. 아내는 이 시간마저 강제하겠다는 것이고 나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짧게 보면 아내가 맞을 수도 있지만 길게 보면 나의 주장이 옳다. 우선 (우리나라 아이들을 제외한) 세계의 아이들이 자유롭게 크고 있고 그 아이들이 우리사회 아이들보다 여러 면에서 경쟁력을 지닌다. 운동도, 수학도, 학문도, 정치도, 경제도 세계의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보다 못하지 않다. 그렇다면 결과값이 그리 낙관적이지도 않은 자유 박탈이란 선택지를 고를 이유가 없다. 나아가 자유롭게 큰 아이들은 스무 살이 넘어 그 잠재력을 압도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인간의 고유성, 개성이란 것은 발현되기까지 무르익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을 충분히 견뎌내면 드디어 꽃을 피우는데 그 시기가 대개는 20대다. 우리 사회 20대, 기껏해야 취업 전쟁에 뛰어들 뿐 그 이상은 하려 하지 않는다. 사회 생활을 아예 포기하는 젊은이도 급격히 늘고 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유를 빼앗긴 유년기를 보낸 아이들의 잔인한 역습인 것이다.



DALL·E 2023-12-20 08.11.56 - A joyful young girl experiencing a moment of pure happiness. She is about 10 years old, with curly, shoulder-length blonde hair, and bright green eyes.png



내가 이 다음에 크면 아픈 엄마를 치유해 줄게, 아빠.


엄마와 한바탕 한 큰 딸을 데리고 밥을 먹는데 딸애는 오히려 엄마를 걱정한다.


엄마에게 마음의 질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빠. 내가 크면, 심리학이나 의학을 공부해서 엄마의 질병을 치유해 주고 싶어.


그래, 꼭 그렇게 되길 바라. 아빠는 활리를 믿어.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구나.


엄마는 딸애를 떡잎부터 노란 애 정도로 비난하는데, 딸애는 오히려 그런 엄마를 치유해 주겠다니 이 무슨 우아한 역설인지. 적어도 내 관점에서, 딸애는 잘 크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일정한 자유를 보장받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뭘 잘하는지 명확하게 아는 딸은 아마도 스무 살이 넘으면 다이아몬드 같은 개성과 고유성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때가 되면 딸애는 스스로 자유의 시간을 통제하면서 학습에 매진하고 진정한 자기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되리라. 나는 내 딸이 그런 성인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한 목표 아래 지금 당장은 내 딸애에게 무엇보다 자유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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