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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려받을 유산이 없어서 참 행복하네요

by 김정은

나, 받을 유산이 없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자랑이다. 시집, 장가 갈 때 저마다 얼마를 받았네, 그래서 어디에 뭘 샀네, 말을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어이쿠, 자기 삶을 어쩌려고 그런 돈을 받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나라도, 부모가 돈을 주면 넙죽 받았겠지. 그리고 좋아했을 거야. 그건 맞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 전혀 그러한 조건이 아니었다는 데 감사하게 된다. 부모에게 크든 작든 돈을 받았다면 왠지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것 같다.


나, 어머니로부터 받을 건 제대로 다 받아냈다. 엄청난 크기의 사랑과 믿음을 받았고, 건강한 몸, 유능한 지혜를 물려받았다. 그게 내가 받은 유산이다. 그것이면 족하지 않을까?


나, 어머니로부터 받은 막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내 인생을 책임져 왔다.


내 삶을 구원한 것은 무엇인가. 날 지금의 나로 이끈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내 삶의 공간을 천국으로 만들어 주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절박감이었다. 절박한 조건, 무언가 나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 나 스스로 책임져야만 하는 상황, 그것들이 내게 목표를 설정하도록 강요했다. 머리를 쥐어짜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꼭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것, 내 인생을 걸고 완성해야 할 무엇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약 그럴 필요가 없었다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면, 살 만했다면, 과연 내가 그렇게 했을까?


물론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목표란,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절박한 환경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찾게 되는 등불이다.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하며 따뜻한 환경에서라면 굳이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삶이 여유롭고 유복한 환경이라면 '적당히'가 날 유혹하리라. 적당히, 흘러가는 대로, 편하게... . 인간은 자신과 쉽게 타협한다. 타협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데도 굳이 그 조건을 박차고 나가서 어려운 환경에 자신을 놓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너한테 집 한 채 해 줄 수 있었으면, 네가 더 좋은 데서 공부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었다면, 과외를 시켰다면, 차를 사 줬다면... .


내 어머니는 늘 자신을 탓한다. 물려줄 유산이 없었다는 것에 대해 어머니는 내게 늘 미안해 한다. 아니, 세상에!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어머니로부터 왔는 걸, 왜 어머니는 뭘 더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나의 근면성, 약간 좋은 머리, 이성, 낙관주의, 긍정성, 글 쓰는 재능, 따뜻한 인성, 품위, 이 모든 것이 어머니로부터 온 것인데 그 이상 뭘 더 나에게 주어야 한다는 말인지.


나, 내 딸들에게 물려줄 유산이 없다. 돈이 있어도, 딸들에겐 주지 않을 것이다. 이미 줄 건 다 줬으니까. 딸들은 딸들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유산 따위는 필요없어, 라고 말하는 딸들을 볼 생각이다. 내 딸들은 충분히 그럴 역량을 가지고 있다.


아빠한테는 돈 안 받아도 돼. 이미 다 받았잖아.


그래, 내 딸들, 잘 커 줬구나. 고맙다.


이런 대화를 희망한다. 아빠, 돈 좀 줘. 그렇게 말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성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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