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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퇴직을 통해 얻어야 할 교훈

by 김정은

큰 이변이 없는 한 당신의 퇴직 생활은 비극일 것이다.


18년 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이들의 퇴직을 지켜봤다. 어떤 이는 근사한 퇴임식을 거쳐 가고 어떤 이는 소리 없이 그냥 나가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사내 게시판에 일장 연설문을 올리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퇴직자 재고용으로 어느 날 사무실로 조용히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그 모든 경우 다, 나에게는 끔찍한 모습이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퇴직한 이들의 생활이 궁금하다. 잘 살기는 하는지, 할 일이 없어 매일 빈둥거리지는 않는지, 근사한 곳에 재고용돼 훌륭한 만년을 보내는지 등에 관심이 큰 것이다. 물론 사람 사는 일에 궁금증이 많은 천성 때문이리도 하리라. 어떤 사람이 퇴직 후에 아주 잘 됐대, 하는 말을 들으면 귀가 쫑긋 선다. 왜? 어떤 뾰족한 재주가 있었어? 재산이 많았어? 그렇게 물으면서 나름 꼬치꼬치 뒷조사를 벌인다.



DALL·E 2023-12-22 17.55.19 - A serene and content elderly person sitting on a rocking chair on a porch, surrounded by lush greenery. They are wearing comfortable, casual clothing,.png



그런데 사실 나는 미리 알고 있다. 나만의 추론이긴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나간 이들, 별 볼 일 없다. 왜? 그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 타인에게, 타인의 취미와 기호에, 생활에, 관심사에 관심 많다. 그들이 뭘 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뭘 들여다보고 있는지 보고 듣는다.


관찰자라면 공감하겠지만, 사실 관찰이라는 것에 대충이란 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에 예민하다. 오감이 열려 있는 것이다. 과장을 보태면 숨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추론이 가능하다.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지, 돈에 민감한지, 책을 즐겨 읽는지, 숙고하는지, 자식과의 관계가 나빠 불행한지, 아내를 사랑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나의 관찰에 의하면, 퇴직 후 생활을 대비하는 사람, (거의) 없다. 사람들, 그래서 불안하고 그래서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에 열광하는 것이다. 마땅한 대비가 없는 자,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몰려드는 법이다.


내가 보고 느낀 바, 퇴직은 모든 이에게 고통이다. 어느 날 문득 일어나 보니 갈 곳이 없고 할 일이 없으며 전화도 안 오고 만날 사람도 사라진다. 그게, 보통 사람들이 겪는 퇴직자의 일상이다. 그것이 빤히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준비하지 않는다.


그러니, 근사하고 요란한 퇴임식 뒤에 기다리는 것은 불안과 외로움, 무능감, 절망이다.



DALL·E 2023-12-22 17.56.01 - A retirement ceremony scene in an elegantly decorated hall. The room is filled with colleagues and friends, all gathered to celebrate. At the center, .png



'그들은 눈먼 인도자들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마태복음 15:14)


소경을 따라 모두 구덩이에 빠지는 것. 이것은 남 이야기가 아니다. 출생연도에 따라 차례차례 퇴직의 구덩이에 빠지는 것, 우리들의 모습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어리석고 둔해 민감한 감각으로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다. 미래를 대비한다는 것은 현재를 희생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사람들, 나는 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부동산 시장을 기웃거리거나 그게 아니면 자신의 인적, 물적 자산을 과대평가에 허황된 꿈을 꾸는 게 전부다.


쥐과 포유류에 속하는 레밍(나그네쥐라고도 불린다)은 대이동을 하며 들판을 달리다 집단 익사한다. 절벽에 도달한 대장 레밍이 절벽으로 뛰어내리면, 그 뒤를 따르던 수만 마리의 레밍 떼가 차례로 뛰어내리는 것이다. 레밍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른바 레밍효과(lemming effect)다. 아무 생각없이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하는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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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인간의 퇴직은 내 눈에 레밍 효과의 일종으로 보인다.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곳이 절벽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떨어지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셀 수 없이 많은 퇴직자들이 향하는 대로 나 역시 그 길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다. 그 말로는 빤히 예측되는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비극, 만날 사람도 없고 수입은 없으며 할 일이 없어 지옥 같은 나날이 이어진다. 그야말로 내 힘으로 거부할 수 없는 비참이다.


우리가 레밍이 아니라면, 아무 생각 없이 앞에 선 레밍을 따라가는 이가 아니라면, 그러한 비참을 예견하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일 것이다. 앞선 이의 비극이 나의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앞선 이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방향을 되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숙고해야만 한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나의 재능은 어느 곳에서 그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지, 삶의 보람을 느끼며 내가 참전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DALL·E 2023-12-22 17.56.43 - An elderly person deeply engrossed in studying at a well-organized desk. The scene shows them reading a large book, possibly on history or science, wi.png



시간이 많지 않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조바심을 가지고 오늘 하루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십 년이 남았다면, 마치 1년밖에 남지 않은 사람처럼 서둘러라. 냉정하게 이성을 식히고 움직이라. 나 자신의 쓸모를 계발하고 재능의 가치를 높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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