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 이야기가 아니다. 예언도 아니다. 주술도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한 인간의 행위에 이미 운명이 담겨 있다고 보는 편이다. 그런 맥락에서 당신의 퇴직 이후 삶도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퇴직 이후의 삶이 궁금한가? 내 미래가 의심스러운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당신의 행위를 관찰하라.(사람들은 이 중요한 것을 잘 하려 하지 않는다.)
행위는 실로 많은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생각은 행위로 판단된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고 짐작하고 있는 것과 행위가 다를 때 당신의 생각을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지표는 행위다. 생각하고 있는 것, 믿고 있는 것, 신뢰하는 것이 행위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행위가 그 사람의 생각이며, 믿음이고, 종교다.
자신을 잘 아는가?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이 잘 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질문,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다음과 같은 질문에 몇 개나 명확하게 바로 지금 답변할 수 있는지 체크해 보시라.
나는 오늘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나는 내일 내가 뭘 할지 정확히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살아야 할 이유와 내 삶의 의미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다.
나는 10년 뒤 내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나에게는 10년 단위 장기 목표가 있다.
나는 누굴 만나야 할지 누굴 만나지 말아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명확한 단어로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죽을지 알고 있다.
자, 이 질문들 중 5개 이상 그렇다, 라고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아직 당신은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관찰하거나 숙고하거나 분석해 보지 않은 것이다. 즉, 당신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하루 24시간 내내 당신의 행위를 관찰하는 것이다. 제3의 관찰자가 되어 자기 자신을 타자로 설정하고 당신의 행위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 행위를 분석하면 당신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된다.
운명은 정해져 있다, 그러니, 당신의 퇴직 이후 삶도 정해져 있다. 이 말은 바로 이런 토대 위에서 하는 말이다. 생은 짧다. 그러나 내 잘못과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을 정도로는 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이나 오류를 관찰하려 들지도 않을 뿐더러 이것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저 살아오다 보니 축적되고 굳어진 자기 자신을 마치 대단한 철학이라도 가진 이처럼 믿고 싶어할 뿐이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완성형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오류 투성이고 실수를 한다. 올바른 목표를 정립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수정하고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이만이, 그런 야심과 야망을 가진 자만이 자신을 수정하고 고치고 바로잡는다. 그러한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든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
지금 부지런하지 않은데, 성실하지 않은데, 목표가 없는데, 오늘 마땅히 완수해야 할 책임이 없는데, 그런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군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신의 퇴직 후 삶이 밝을지 어두울지, 이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다. 정약용이 말한 것처럼 군자와 소인의 유일한 차이는 성장에 있다. 군자는 매일 한 계단씩 성장하는 자이고, 소인이란 매일 한 계단씩 아래로 내려가는 자다. 비유하자면 그렇다.
우린 재벌을 칭송하고, 건물주를 우러러보거나 부러워하고 안정돼 보이는 삶을 사는 이들을 존경하지만, 사실 우리가 존경해야 할 것은 오직 성장하려는 태도뿐이다. 지나가는 개미 떼를 발로 밟으면 거기서 반드시 살아 꿈틀거리며 다시 걸어가는 개미가 있기 마련이다. 그 개미는 마침 운이 좋았던 것일뿐 어떤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인간도 내 생각에는 이와 같아서, 특별한 재주가 반드시 특별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운이 따르고, 어떤 이는 그저 주어진 혜택을 누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것이 부럽지 않은가, 하면 그렇지는 않겠으나 천운을 기대하며 삶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린 운명을 개척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내가 바로잡을 수 있는 삶이다.
퇴직 이후가 걱정되는가? 그렇다면 당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로잡아라.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고, 짊어져야 할 책임이 있으며 10년 단위의 장기 목표를 이루려 노력 중이라면 나는 그가 이미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차가 없지 않겠으나, 그런 사람은 쉽게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힘없이 타인에게 의지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기 삶의 충직한 주인이며, 자신이 설계한 삶의 길을 따라 당당하게 나아가는 철학자다. 그런 이에게는 인간의 향기가 난다.
나는 내 운명을 어느 정도 안다. 나에게는 오늘 당장 해야 할 일이 있고, 누굴 만나야 할지 알며, 10년 단위의 장기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나는 매일 나 자신을 수정하고 내 오류를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못하다. 나아가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나을 것이다. 이러한 운명의 소유자는 행복하고 감사할 줄 알며 만족할 줄 안다.
운명을 개척하는 자가 되면 덜 불안하고 더 만족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식견이 쌓이고 통찰력이 생긴다. 운명이란 종이 위에 적힌 무언가가 아니다. 오늘 내 행위, 지금 당장 보이는 내 행동, 그것이 곧 나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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