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아들은 특별하다. 아니, 특별했다.
밥 먹는 것부터, 옷을 사는 것, 가정에서의 책임이나 권리 등 모든 면에서 딸과는 다른 대우를 받았다. 과거로 거슬러올라갈수록 더 심했으리라.
나의 어머니가 어린 시절엔 아들 사랑이 유독 심했다고 한다. 집안일은 죄다 딸 몫이고, 아들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 뭐, 그런 이야기다. 그런데 나도 이 이야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내 어머니, 누나와 나를 공평하게 대하셨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한 공평은 아니었던 듯하다. 우선 나는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내 방 청소는 가끔 했는데, 집 청소 정도는 가끔 했는데 설거지나 빨래, 이런 일은 손도 대 보지 않았다. 그냥 그게 자연스러웠고, 누나와 어머니는 으레 날 그렇게 대접해 주었다. 명절에 음식 준비에도 나는 참여해 본 일이 없다. 그땐 그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결혼하고 나서, 몇 년이 흐른 시점에 내 아내가 내게 그런 말을 짚어 주었다.
오빠, 오빠네 집에서는 특별 대우 받고 자랐잖아.
내가?
아니야?
글세, 그런 점이 없지는 않지만... .
말을 얼버무리는 내게 아내가 콕 집어 이야기해 준다.
오빠, 명절에도 전 안 부치잖아.
그렇지.
우리집은 아니야. 홍진(내 처남이다)이가 전 부치는 거 다 했어.
그렇네.
내 처남, 집안일에 솔선수범하는 괜찮은 남자다. 아내 말을 듣고 보니, 여러 면에서 특별 대우를 받은 게 사실이었다.
심리학에서는, 특별한 대우를 맏고 자란 남성일수록 폭군이 될 가능성도 높으나 사회적 성공 가능성도 높다고 말한다. 이들은 일종의 왕자병 기질이 있어서, 좋게 말하자면 리더십이 있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 목표를 설정하면 한 우물을 파고 결국 성공하고야 말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확률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17년 전, 내 어머니는 나의 결혼으로 인해 졸지에 시어머니가 됐다. 내 아내는 졸지에 며느리 자리에 앉게 됐다. 한국 여자들이 '시'자 들어간 사람을 어려워 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았는데 내가 직접 겪게 되니 이 문제, 보통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며느리 된 사람은 엄청난 책임감에 시달리고, 시어머니는 자신이 나쁜 시어머니가 되지 않으려 엄청나게 노력한다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것이다. 만약 이 둘의 관계가 나쁘다면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됐다. 둘 다 최선을 다해도, 문제가 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개중에는 사이 좋은 시어머니, 며느리도 존재할 것이다. 가뭄에 콩 나듯 하겠지만. 그러나 대다수는 그렇지 못한 듯하다. 며느리는 늘 책임감에 시달리고, 시어머니는 나쁜 시어머니 콤플렉스 때문에 행동 하나 말 하나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이 둘, 좀처럼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다.
남자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다. 아니, 남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느 한 편을 들지 말 것! 결혼 전부터 이런 이야기 무수히 들었다. 그렇게 노력은 했는데 살다 보면 그게 잘 안 될 때도 있다. 이것은 인간의 불완전성 영역이니, 굳이 핑계를 대지는 않겠다.
듣자 하니, 주변에는 남자의 역할을 외면하는 이도 많은 듯하다. 아예 문제를 못 본 척하거나 양비론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명백히 시어머니가 잘못된 요구를 하는 경우인데도 중재자 역할을 방기하는 이도 적지 않은 듯하다. 반대로, 완전히 며느리 쪽으로 기울어서 어머니를 만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본다. (이 문제는 다음 편에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
내가 보기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한국 시어머니들의 특징이 있다.
-며느리를 한 명의 인격자로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며느리에게는 (하늘에서 부여한)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며느리는 이래야지, 라고 하는 며느리상을 가지고 있다.
-착한 며느리는 없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내 아들은 완벽한데 며느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디까지나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이니 분노하지 마시라.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착한 시어머니도 많으니.
일반적으로, 시댁에서 집을 사 주는 경우나, 결혼 시 돈을 대 주는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는 자연 순리다. 돈을 낸 자, 권리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가장 좋은 것은 도와주고 생색은 내지 않는 것일 텐데 이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주지 말고 받지 말자고 주장한다. 받으면 불편해지고, 문제가 꼬인다.
좋은 시어머니, 나쁜 시어머니, 그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자기 아들이 귀하면 남의 딸도 귀한 법인데 인간은 자기 중심적이라 이게 좀처럼 실천되지 않는 부류가 있다. 이런 여자들은 욕 먹어 마땅하다. 좋은 시어머니란, 내 생각에 남의 집 딸, 남의 집 귀한 딸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존중하고 또 존중해 주는 사람이다. 나쁜 어머니란 이 반대의 경우이리라. 조심도 하지 않고, 나아가 존중도 없는 사람, 이런 사람 나쁘다. 그리고 내 주변엔 이런 이들이 제법 있다. 나는 남의 이야기를 흘려 듣지 않는 편인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남의 집 귀한 딸, 존중하지 않는 집이 꽤 있다. 그런 사람은 며느리의 존중 역시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문화상, 나쁜 시어머니를 만들어내는 구조가 있다는 점도 말하고 싶다. 시댁에서 집을 사 주거나, 집 사는 데 돈을 보태야 한다는 믿음, 관습, 생각 말이다. 이거, 건강하지 못하다. 자기가 살 집은 자기 돈으로 사는 것이 맞지 않은가? 남자가 집은 해 와야지, 이런 말, 이제 그만하자. 본인들 살 집은 본인들 노력으로 사야 한다. 부모가 돈이 넘치도록 많아 정 거절할 수 없다면, 그래서 집을 시댁 부모가 사 주었다면, 나쁜 시어머니가 되지 않기 위해 사 준 것에서 그쳐야 한다. 집 사줬다는 걸 핑계 삼아 며느리를 존중하지 않고, 조심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나쁜 시어머니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며느리는 그 순간, 시어머니, 시아버지에 대한 존중을 잃게 되리라.
결국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인간이다.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권리가 있다. 동시에 나쁜 관계는 끊어버릴 권리도 있다.
모든 것은 자기 책임이다.
나쁜 시어머니라면, 나는 관계를 끊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런 관계, 지속해서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과의 관계는 내 삶에 도움 될 게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어머니라 해도 마찬가지다. 시어머니라면, 존중받을 만한 행동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거 없이 좋은 시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이것은 모든 인간 관계의 기본 중에 기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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