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는 나의 매형의 장모이다. 내가 총각이었던 시절, 나는 장모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나의 큰 조카가 막 태어났을 때, 그리고 두세 살이 될 때까지 이 녀석은 사실상 어머니가 기르다시피 했다. 이 녀석은 한번 울기 시작하면 도무지 그치질 않아 나도 밤잠을 한두 번 설친 게 아니었다. 어머니는 새벽 내내 울어대는 어린 조카를 업고 하루가 멀다 하고 집 앞 공원에 나가셨다. 나는 현관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히고 또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소리를 들으면서 밤을 새웠다.
내 어머니에게 있어 어쩌면 아들인 나보다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다. 지금도 내 어머니, 이 조카 녀석 걱정을 하신다. 이 조카는 무럭무럭 자라 올해 여름, 입대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2008년 봄, 장모님을 두게 되었다. 내 장모님은 평생을 가족을 위해 일하시고, 자신은 돌보지 않는, 대한민국 평균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를 내외면에 장착하신 분이다.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간 날,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 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메뉴가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으나, 그날 나는 푸짐하고 따뜻한 저녁을 대접받았다. 그리고 지금 오늘까지 장모님은 내게 늘 무언가를 주시는 분이다.
처가집에 가면, 나는 소파에 앉아 있거나 그것도 불편하면, 안방에 들어가 드러누워 있다. 내 집에서도, 처가에서도 나는 누구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존재하는 대한민국 평균 남자다. 장모님에게 살갑게 대하거나 애교를 보이는 데에도 능숙하지 않다. 어찌 보면 무뚝뚝한, 멋대가리라곤 없는 그런 사위, 그게 내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가끔 장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말한다.
어머니, 예쁘게 딸을 키우셔서 제게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쑥스러운데,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듯 싶어 나는 가끔 장모님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다.
장모님의 생신이나 아내의 생일은 내게 좋은 기회다. 아내 생일 때가 되면 가끔 나는 장모님에게 말한다.
오늘은 제 아내의 생일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생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건강하고 예쁘게 키우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제가 더 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니.
이런 말을 들으신 장모님은 무척 기뻐하시는 듯하다. 그냥, 내 느낌이다.
아내는 가끔 말한다.
오빠는 우리집에서 나처럼 일하지 않잖아. 그냥 먹기만 하고 누워 있다가 오는 게 다잖아.
너무 맞는 말이라, 대꾸할 수 없는 말이다. 이런 나를 다 받아주시는 게 나의 장모님이라니! 대한민국 평균 장모님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론한다. 내 어머니의 경우에도, 나의 매형의 경우에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장모와 사위 사이는 대개 이런 광경이리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겠으나)
장모는 '시' 자가 붙지 않아 그런지 몰라도 군림하려 하지 않는다. 사위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기준 따위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 사위를 닥달할 일이 없고 평가하려 들지도 않는다. 장모는 도리어 사위를 손님으로 대접한다. 사위는 그런 장모님 덕분에 언제나 환영받는 사람이 되고, 존중받는 사람이 된다.
단언컨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대한민국 사위처럼 장모님의 사랑과 존중을 받는 경우는 없으리라. 이것은 '시' 자가 붙은 사람들이 며느리를 대하는 태도와 극명하게 대조적인 풍경이다.
'시' 자 붙은 사람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장모님, 대한민국 평균 장모님의 태도만 가지도록 노력하면 좋으리라. 그렇게 된다면, 누가 '시' 자 붙은 사람을 싫어할 수 있겠는가? 누가 '시' 자 붙은 사람들을 어려워하고 멀리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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