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내미 한창 때다.
2010년생, 좋은 나이다.
그 좋은 나이를 좋은 나이답게 보내게 하려고 나는 오늘도 노력 중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살지만, 캐나다에 사는 아이들처럼, 호주나 영국에 사는 아이들처럼 키우려고 애쓴다. 별난 교육법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적당히 놀게 하고, 쉬게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도록 하고, 자기 공간을 주려 애쓸 뿐이다. 그거면 족하다.
이제 중1인 내 딸내미, 고민이 많다. 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외모도 꾸미고 남자친구도 사귀어야 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세상사에 무척 관심이 컸던 아이다. 친구를 관찰하고, 학교를 관찰하고 어른을 관찰하며 해석하고 분석하며 나름의 정보를 축적해 온, 매력적이고 지적인 아이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내 아이에게 학교 공부보다는 이런 것들을 더 중시하도록 가르쳤다. 한 인간의 성공 가능성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지표는 첫째가 지능이다. 둘째가 성실성이다. 여기에서 지능이란 단순히 영어, 수학 문제 풀이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각의 수준, 숙고의 높이가 높아야 하고 관심 분야가 다양해야 하며 분석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예술도 필요하고 운동도 필요하다. 뇌는 다면적으로 발달해야 하고 나이에 맞게 성장해야 한다. 너무 빨리 가서도 안 되고, 너무 늦어서도 곤란하다. 어느 한 가지(문제풀이)에만 능통한 요즘 아이들은 지능이 높은 게 아니라 사실은 기형적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적 불균형, 성장 지체다.
어제 저녁에 설거지를 치는데 저녁을 먹던 딸내미가 묻는다.
아빠, 카이스트가 좋은 학교야, 연세대학교가 좋은 학교야?
나, 설거지를 치다 말고 기절할 뻔했다. 우선은 그 질문 자체가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히는 것이었다. 나는 내 아이가 한국의 지독한 서열 문화에 젖어들지 않기를 원한다. 서열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스스로 높은 곳을 지향하되, 천박한 인간이 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딸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어디가 더 좋은 학교인지 궁금해서.
내가 잘 아는데, 딸내미, 이런 걸 물을 애가 아니다. 어디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듣고 온 게 분명하다. 딸내미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종종 이런 질문을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같은 취지의 답변을 해 줬다.
아빠, 좋은 대학 나왔어?
서울대학교는 공부를 얼만큼 잘해야 갈 수 있어?
우리 담임 선생님은 명문대 출신이래.
전부 이 몹쓸 사회가 아이들에게 거는 주문이다. 좋은 대학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정말 그래? 헛, 그거 아닌데... .
나는 아이에게 대답해 주었다.
자기가 뭘 하고 살 것인지에 따라 카이스트가 좋은 대학일 수도 있고 연세대가 좋은 대학일 수도 있지. 그런데 다른 대학이라도 나쁜 대학일까? 그건 아니야. 그러니까 그 두 대학이 좋은 대학이라고 물으면 대답할 수가 없어. 나쁜 대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덮어놓고 좋은 대학이라고 할 수도 없어. 뭘 기준으로 좋은 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딸내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계속 말했다.
물론 아주 옛날에는 둘 다 좋은 대학이라고 불렀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졸업하면 기업에서 데려가던 시절에는 그랬어.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 시대가 바뀌었지. 이제는 대학 간판으로 먹고 살던 시절은 끝났거든.
아, 그렇구나. 그럼 아빠는 어디가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하는데?
둘 다 좋은 대학일 수도 있고 둘 다 그저그런 대학일 수도 있지. 우선 좋은 질문이 아니고, 둘째는 답이 있을 수 없는 질문이야, 활리야. 지금도 공부 잘하는 애들이 가는 대학이란 건 맞아. 근데 좋은 대학인지는 모르겠어. 뭐가 좋은 대학일까?
첫째, 좋은 도서관을 갖춘 대학은 좋은 대학이다.
둘째, 훌륭한 교수가 있는 대학은 좋은 대학이다.
셋째, 내가 성실하게 공부할 수 있고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대학은 좋은 대학이다.
넷째, 졸업 후에 더 넓은 영토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더 다양한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대학은 좋은 대학이다.
뭐, 이런 기준 정도면 좋은 대학을 말할 수 있을 거야. 이런 기준에서, 아빠는 네가 미국이나 영국 같은 데서 대학을 다니길 바라는 거야. 우선은 영어를 사용하니까 네가 진출할 수 있는 무대가 넓어질 테고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관계의 폭이 확장될 테니까. 좋은 도서관을 갖추고 좋은 교수가 있고 미래를 개척할 토대가 한층 탄탄하고 졸업 후에도 진출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질 테니.
아, 그렇구나.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학벌 욕심? 나, 그런 것 없다. 아이가 지적 욕구를 가지고 지능을 발달시키고 성실성을 갖춘 성인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 국내 대학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지나치게 서열화 되어 있고, 경쟁적이며 학습하기 좋은 공간이 아니다. (이것은 지극히 내 개인적인 기준에서 그러하다는 이야기다.)
제발 그런 이야기, 애들한테 그만 했으면 좋겠다. 어디가 명문대니, 어디 정도는 나와야 한다느니, 그건 다 헛소리다. 80년대, 기껏해야 90년대까지나 적용되던 옛 주술이다.
대학이 인생을 결정하느니, 좋은 대학 가면 그때부터 행복해지라느니, 그런 헛소리, 그만!
그래서,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네가 들어가서 좋은 수업을 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고 더 도약할 계단을 제공할 수 있다면 거긴 네가 있어야 할 곳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곳이 좋은 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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