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이 피곤하고 회사 사람들이 싫어서 하루 빨리 퇴직하고 싶은 이들도 많으리라. 내가 그러한 경우다. 물론 나, 잘리지만 않는다면 계속 회사를 다녀야 한다. 거의 모든 직장인들의 운명이 그러하지 않는가?
나, 퇴직을 꿈 꾼다. 나쁜 인간들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자유롭고 싶다.
나, 회사에서 고생 많이 했다. 거창하게 말하고 싶지 않으나 좋은 언론을 꿈 꾸며 싸웠고, 올바른 언론인의 길을 가려 저항했다. 그 결과로 적이 많이 생겼고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상관없다. 그게 내 숙명이려니, 한다.
김정은 씨, 경멸의 호칭
김정은 씨. 특정 그룹의 선배들, 나를 그렇게 부른다. 언론사, 그중에서도 공적 책임을 지는 공영방송에 다니지만, 여기엔 사실상 파벌이 존재한다. 파벌이 나뉘게 된 경위는 복잡하나 가장 큰 요인은 정치적 견해가 아닌가 싶다. 흔히 말하는 어느 당 지지자 문제는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언론, 언론인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의 문제다. 국가 권력, 정부 권력을 미화하거나 찬양할 수도 있다고 믿는 이들이 한 파벌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그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결과적으로, 전자는 보수, 후자는 진보,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진보 정당 지지자, 보수 정당 지지자의 차이가 결코 아니다. 살펴 보자면, 보수 정당을 지지하지만 국가 권력 미화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 점은 짚고 넘어가야 겠다. 통계적으로 볼 때 권력 미화에 별 거부감이 없는 이들이 대체로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고 일본의 전쟁 범죄에는 관대했다. 이는 유의미한 연관성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언론(언론인)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정치 지향이나 성향을 아예 가지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뚜렷한 정치적 성향을 갖되(이는 시민권에 해당한다. 헌법도 개인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한다) 이를 보도와 연관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언론인이 그 정당의 비위나 부패 정황을 확인하고도 보도하지 않는다면, 이는 명백한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다.
단지, 언론인이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중립성 위반은 아닌 것이다. 여기에 대한 오해가 많다. 내 동료들, 선후배들 중 상당수는 정치적 중립성을 오해해 한 명의 시민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정치적 지향 자체를 기피하고 회피하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 무관심, 정치적 무지다.
우리 사회 정치 뉴스가 대부분 흥미 위주의 겉할기 보도에 그치는 것은 언론인들의 정치적 무지와 연관이 있다. 언론인들 자체가 정치에 관심이 없고, 자신 스스로 정치적 성향이 없는 데다, 정치 자체를 혐오하는 경향이 짙다. 그렇기에 정치 자체를 볼온시 하는 보도가 넘친다. 정치인들은 다 부패했어, 라는 의식이 보도 전반에 깔려 있다. 나는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우리 회사는 크게 두 그룹으로 갈려 있다. 내가 어느 쪽에 속해 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다만, 나는 언론인으로서의 양심, 그리고 그 이전에 시민으로서의 양심, 헌법이 보장하는 가치를 따르고자 노력하는 인간이라는 점만 밝혀 두겠다.
나와 반대 진영에 있는 선배들은 나를 가리켜 '김정은 씨'라고 부른다. 겉으로만 보면, 경어다. 마치 나를 향해 존칭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말, 나는 아주 기분이 나쁘다. 몇 년 전만 해도 정은아, 야, 이렇게 부르던 사람들이 2017년 대규모 파업 (국정농단 사태 때다) 후 나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너랑 말 섞기 싫구나.
널 상대하고 싶지 않다.
넌, 내 후배도 아니다.
'김정은 씨'라는 호칭이 나에겐 위의 의미로 들린다. 실제 의미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후배인데도 정은아, 라고 부르지 않고 굳이 '김정은 씨'라고 부르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특별인 취급하는 것이고, 그 호칭엔 경멸 내지는 차별의 뜻이 담겨 있다. 다른 후배들에게는 누구누구야, 하고 이름을 그냥 부르면서 굳이 나에게만 '김정은 씨'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들의 편견, 생각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나는 가끔 내게 '김정은 씨'라고 부르는 선배를 향해 '왜 불러, 누구누구 씨'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들이 내게 존칭을 쓴다면, 나 역시 그들에게 존칭으로 화답한다고 한들 무슨 문제가 있는가? 그러나 선배를 누구누구 씨라고 불렀다간 버릇없는 놈으로 찍힐 게 뻔하니,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냥 아예 이름 부르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기도 하다. 내 이름에 씨를 붙여 나를 부를 때마다 화가 치솟는다.
아마 일반 회사에서는 존칭을 쓰는 것이 좋은 의미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 회사의 경우엔 전혀 다르다. 존칭은 곧 경멸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 아주 불쾌하다.
퇴직을 꿈 꾸지만, 멋진 퇴직이 되어야 하리라. 내가 성공하고 잘나가는 것이 나를 경멸하던 이에게는 나쁜 일이 될지 모르겠다. 독자 여러분들이여, 올바른 길을 가라. 성공하라. 이것이 악에 대한 가장 현명한 복수다.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구독은 작가를 춤추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