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지키고 싶어, 아빠.
어느 날, 큰 딸내미가 말했다.
그렇구나. 좋은 생각 같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생각했다. 아마도 교실 내에서 여자 애들 가운데, 혹은 남자에들에게서 도전 받는 상황이 있는 모양이구나. 나도 학교를 다녀봤기에, 남자애들이든 여자애들이든 내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어떻게 생기는지 잘 안다. 아이들은 이유 없이 친구를 괴롭히기도 하고, 폭력의 의미를 잘 모른 채 주먹을 휘두르기도 한다. 내 경험상 그런 아이들은 반마다 교실마다 몇 명씩은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교실 안에는 그러한 폭력성이 예전보다 더하다고들 말한다.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간 뒤에 그런 상황이 아이들에게 닥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 다행히 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러나 소소한 폭력 사건은 있었다. 큰 딸의 경우에는 옆 짝꿍인 남자아이가 빗자루 채로 딸내미 머리를 내리친 일이 있었고 작은 딸의 경우에는 뒤에 앉은 여자아이가 내 딸의 뺨을 몇 달 간 때린 일을 뒤늦게 알았다.
이 두 경우 모두, 나는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내 아이를 때린 아이의 부모와 통화하거나 직접 만났고, 아이 행동의 문제를 지적했다. 다행히, 조치를 취한 뒤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았다.
듣자 하니, 오늘날 우리사회 교실에서는 내 딸들의 경우보다 훨씬 더 폭력의 정도가 심하고 악질적인 사건들이 흔히 벌어지는 모양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교육을 받는 목적은 인격을 쌓고 덕을 쌓으며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함인데 그 목적은 이제 사라진 듯하다. 인격의 고양, 교양의 훈련, 덕의 형성이 사라져 버린 자리엔 경쟁만이 홀로 남았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성적이 곧 선이란 믿음을 강요받고 있다. 성적만 나오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1등이 곧 목표가 되고, 목적이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이 사회를 아름답고 따뜻하고 정의로운 곳으로 만들 역량을 갖추게 될까? 그럴 가능성은 낮다. 경쟁에서 승리한 아이들이 판검사, 의사, 정치인, 관료가 되어 이 땅을 천국이 아닌 지옥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권력과 인격을 동시에 가진 이를 찾아볼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다. 우리는 지옥을 만들려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무튼. 내 딸아이는 교실의 폭력 가운데 스스로를 방어하려, 체력을 다지려 복싱을 시작했다. 몇 주 전 아내가 딸아이를 데리고 복싱 아카데미에 딸내미를 등록시켰다. 하루 1시간, 아이는 운동을 하고 온다. 그저 자신을 방어하는 걸 넘어, 아주 중요한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는 스포츠, 활동이 필요하다. 자기 신체를 아는 것은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내 몸엔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정도 속도로 뛸 수 있는지, 얼마나 높이 점프할 수 있는지, 얼마나 기민하게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지, 다리 힘과 팔의 힘이 어느 정돈지 아는 것은 나 자신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지능이 높은 인간이든 아니든, 몸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 내 아이는 이제 막 그 일을 시작한 셈이다.
아마 네가 복싱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널 함부로 보지 못할 거야.
나는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이는 하루 5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 공부한다. 그 공부를 지속하려면 몸이, 신체의 단단함이 따라주어야 한다. 복싱이 아마도 내 아이에게 여러 모로 도움이 되리라.
열네 살 복서, 내 딸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