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있어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두 갈림길이 있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1. 군중을 따라갈 것인가?
2. 나만의 교육 매뉴얼을 따를 것인가?
이것이다. 딱히 나의 주관이 없고, 군중의 선택이 옳은 것 같다면 첫 번째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옆집 엄마가 하는 대로 가야 한다. 이것은 어떤 길을 나아가는 데 있어 목표가 없을 때 나타나는 일이다. 어쩔 수 없어, 라는 말은 이럴 때 쓰인다. 아이가 있는데 대체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내야 할지 마땅히 자신만의 매뉴얼이 없다면 방향이 없이 방황하거나 누군가를 따라가는 방법 외엔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군중의 생각, 군중의 행동에 동의가 되지 않고, 내가 옳다는 방향 대로 가고자 하는 이라면 두 번째 선택지가 적절하다. 이는 확고한 교육 철학, 교육에 대한 방향, 목적 의식을 갖춘 사람이 가는 길이다. 어떻게 아이를 교육시켜야 하는가. 어떤 아이로 성장시키고 싶은가. 내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선물하고 싶은가.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확고한 목적을 가졌다면 자신만의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올바른 교육을 실천한 타인의 매뉴얼을 참고해 나만의 매뉴얼을 만들 수도 있다. 여기엔 노력과 품이 들어간다.
사람들은 막연하게 내 아이가 잘 컸으면 좋겠어, 낙오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면 좋겠어, 먹고 살 만한 능력 정도는 갖췄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만 할 뿐 자신만의 매뉴얼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그런 이는 극히 드물다. 그러니 주변을 둘러보고 기웃거리는 것이다. 누가 어느 학원을 보낸다더라, 어느 학원이 수학을 잘 가르친다더라, 누구는 뭘 아이에게 시켜서 효과를 봤다더라, 하는 것 따위를 정보랍시고 교환한다. 나아가 이것을 특별한 묘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한다.
넌 모르면, 내가 하는 대로 따라와.
엄마들끼리 모여서 불안을 공유하고 정보를 나눈다. 그 대열에 합류하면 내 아이도 잘 되리라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돈을 쓴다. 그리고 아이를 닥달해 어떻게든 그 집단 속에 밀어넣는 것이다.
개중에 아이를 명문대에 진학시킨 부모는 승리자 행세를 한다. 그렇지 못한 부모는 내가 뭔가 부족했나 싶어 죄책감 내지는 후회를 갖는다.
우리사회에는 이른바 교육 성공 공식이란 게 존재한다. 조기 교육을 시킨다, 선행 학습을 시킨다, 좋은 학원을 보낸다, 따위의 것이 그것이다. 좋은 학원을 보내려면 돈이 많이 든다. 이것도 상식이 됐다. 좋은 대학 가려면 좋은 학군으로 가야 한다. 외고, 과학고 등을 보내야 명문대에 갈 확률이 높아진다.
단언컨대, 이는 성공 공식이 아니다. 확률적으로, 통계적으로 오직 소수만이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대다수 부모가 내 아이가 그 좁은 문을 통과할 거야, 라는 믿음을 갖고 군중을 따라간다. 그러나 그 문은 좁다. 내 아이가 낙오자가 될 확률이 성공자가 될 확률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그럼 어떻게 하지?
모든 인간은 천재를 타고난다. 그것을 학교가, 부모가, 세상이 발현시키지 못하도록 막을 뿐!
이어령이 생전에 한 유명한 말이다. 이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군중이 말하는 신화, 성공 공식은 틀린 것이다. 거기 따라가봤자 재미를 볼 확률은 극히 낮다. 운이 좋게 명문대를 보낸다 해도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명문대에 가고도 할 일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는 점을 명심하자.
우린 다시 두 가지 갈림길 앞에 서야 한다. 바로 이것이다.
1. 명문대 보내는 것이 목표인가?
2. 주체성을 가지고 자기 꿈, 목표를 세워 그것에 도전하고 그것을 실현시키려 노력하는 삶을 사는 참된 인간, 참되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이로 키우는 것이 목적인가?
부모라면, 이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정해야 한다. 첫 번째라면, 지금 하는 대로 하면 된다. 군중이 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 좋은 학군에 밀어넣고, 비싼 학원에 보내고, 파김치가 되도록 주입식 교육을 강요하면 된다. 물론 이렇게 한다 해도 바라는 명문대에 진학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또 명문대에 진학한다고 한들 성공은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건 싫어! 혹시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두 번째 선택지가 남아 있다. 아이에게 자유를 주고, 체험을 선사하고, 친구와 놀이하도록 독려하고 협동하도록 독려한다. 학교 교육에 충실하게 하면서 필수 과목(수학, 과학 정도)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챙겨 준다. 성적과 경쟁으로부터 아이를 해방시켜 주려 노력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경험하도록 독려해 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학습시간과 자유시간을 분리해 각각 보장한다. 중고생 레벨이 되면 학습량을 조금씩 늘리면서, 이에 비례해 자신의 주관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독서와 여행, 부모와의 스킨십, 좋은 선생과 접촉하도록 돕는 것 등이 그 방법이다.
두 번째 선택은 불안하고 불확실한 길이다.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는 행복한 길이다. 인간은 아이든 성인이든 자유가 있어야 행복과 만족을 느낀다.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간이 없이, 여유가 없이, 체험이 없이, 자신을 발견할 수는 없다.
360명이 한 방향으로 달리면 한 명만 1등이 되지만 360개의 방향으로 각자 달리면 모두가 1등이 된다는 말이 있다. 부모라면 내 아이가 달려갈 방향이 어디인지 함께 고민해 줄 책임이 있다. 이것은 아이의 자아실현에 부모가 동참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어렵고 귀찮으며 힘든 길이다.
그러나 내 아이는 많은 체험을 쌓을 수 있고, 자유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으며, 자존감이 높고 주체성을 갖고 자아 실현에 도전하는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이 길을 선택하라고 권한다. 그러고 싶은데 잘 모르겠어, 어떻게 할지 말이야, 이런 독자는 내 브런치를 구독하시길 권한다. 차근차근 그 방법을 알려드릴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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