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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서울대 실력인데 만족 없는 내 친구

by 김정은

그 친구를 만나면 늘 걱정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친구는 원래 군인이었다가 군인 일을 그만두고 임용고시를 쳐서 초등학교 선생이 되었다. 벌써 10년 넘게 교사 일을 하고 있다.


내 친구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내 친구는 아들내미가 어려서부터 직접 공부를 시켰다. 직업이 교사이니 가르치는 일은 수월했으리라. 친구가 열심히 애쓰고 가르친 만큼 아들내미의 성적은 쑥쑥 올랐다. 중학생 때부터 전교 1등을 거의 놓치지 않은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고3이 된 이 아이는 내신 1등급에 수능 성적만 잘 받는다면 서울대에 지원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수능을 잘 봐야지. 뭐 되겠냐? 그게 쉬워? 먹고 살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


친구는 만나면 으레 걱정부터 털어놓는다.


그 정도면 잘 키웠는데, 이제는 네 아들에게 맡겨.


나는 덕담을 건넨다.


뭘 맡겨? 아직 애야. 세상 살아가는 게 만만하냐. 서울대 떨어지면 교대 보내려고 하는데 지도 선생 하고 싶대. 먹고 살기 쉽지 않으니까. 박봉이긴 해도, 월급은 따박따박 나오잖아.


그렇지. 그럼 됐네.


되긴 뭐가 돼. 그것도 가 봐야 알지. 교대도 쉽지 않아.


이런 식이다.


그 다음엔 나에 대한 걱정, 내 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그나저나 넌 어떡하냐. 딸이 둘이나 있는데, 대학은 갈 수 있겠어?


가겠지.


뭘 가. 너 입시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지?


모르지.


요즘엔 내신 따기 힘들어. 애들이 다 열심히 하기 때문에. 올해부터 내신 등급제도 바껴. 부모가 제대로 알아야 돼. 그래야 애한테 어떻게 시킬지 방법론이 나오지.


그렇구나.


나는 내 생각이 있으나, 친구에게 말하지 않는다. 말해봤자, 스텝만 꼬인다.


내 친구, 얼마전 방학을 맞은 아들을 서울에 모 학원으로 보내고 있단다. 내 친구는 아들을 지역 특례 입학으로 서울대를 보낼 요량으로 십수 년 전 포천으로 발령을 받았다. 방학으로 학교를 쉬는 친구는 아침 저녁으로 아들내미를 서울 학원에 실어나른다고 한다.


고생이다.


그래도, 학원 다니니까 좀 배우는 게 있대.


친구는 말한다.


다행이네.


뭐가 다행이야, 월 2백이야, 학원비가. 돈낭비 아닌지 모르겠다.


친구는 툴툴거린다.


친구의 말 속에는 은근한 자부심이 묻어 있다.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잘 성장한 아들에 대한 자랑이 담겨 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친구의 아들내미가 얼마나 노력했을지 모를 수가 없다. 이제 갓 중학생이 된 큰딸내미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간신히 80점 정도를 맞는 걸 보면. 그러나 목표 측면에서 나는 친구와 다르다. 내게 있어, 교육은 장기 게임이다. 대학에 가서 승부가 날 수도 있고, 대학원에 가서 승부가 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승부란 자신의 목표를 세우는 시점을 의미한다. 아무리 좋은 대학에 간들 목표를 세우지 못하면 그 인생은 방향을 잃는다.


서울대 갈 실력을 갖춘 아들에게조차 만족을 못하는 내 친구는 아마도 영원히 만족할 수 없으리라. 왜냐하면 목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목표가 대학이겠으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목표는 빛을 잃는다. 다음 스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만약 교대로 진학해서 교사가 된다고 해도 내 친구가 만족하긴 힘들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 아들의 벌이 걱정, 결혼 걱정, 결혼하면 집 걱정, 집 사면 재테크 걱정... 걱정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 아이를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아이로 키운다면, 이 모든 걱정은 무의미해진다. 내 아이 스스로 해나갈 텐데, 하는 믿음을 가진다면 걱정은 끝난다. 그러니, 아이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것, 이것만큼 좋은 결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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