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는 이 말을 달고 산다. 인생 별 것 있냐? 이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이제는 내 아이들도 그 친구 하면 '인생 별 것 있냐'라는 말을 떠올릴 정도다. 아, 그 아저씨? 아이들은 이렇게 말하고는 저희들끼리 웃어댄다.
이 친구, 존경할 부분이 많다. 우선 성실성이다. 언젠가 설명한 적이 있으나, 이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앞뒀을 때 두어 달 간 주유소에서 일을 했다. 그 추운 겨울에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해 등록금을 벌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사 장교를 했고, 4년 내내 최고 점수를 유지했다. 그리고 장교로 임관해 군에서도 우수한 고과를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친구가 내게 와서 고민을 토로했다. 이렇게 해서는 인생에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친구는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게?
전역할 생각이야.
친구는 말했다.
그 다음엔?
초등학교 선생이나 해 보려고. 쉽지 않아. 임용고시도 봐야 하고. 그런데 승부를 걸어볼 타이밍인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하냐?
나는 좋다, 고 말했다.
그 친구는 곧장 군복을 벗었고, 한두 해 공부해 교대를 입학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초등학교 교사가 된 후에도, 친구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일을 열심히 하는 편이고, 아이들에 대해 책임감을 크게 느끼는 친구는 요즘 학교의 세태에 실망했다. 동료 교사에 대한 실망, 학부모에 대한 실망. 그러나 친구는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다 최근엔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이제, 할 만큼 했고, 안 되는 건 포기하려고.
친구는 말했다.
좋은 교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노력하고 아이들을 어떻게든 제대로 훈육하려고 애쓰는 교사라는 것은 안다. 내 친구, 괜찮은 선생이다.
이 친구는 요즘 권태를 느끼는 모양이다.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이 제대로 살아온 건지 헷갈려.
나와 시간을 보낼 때면 그런 말을 자주 했다.
그래, 열심히 해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지.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나는 말한다.
아니야, 그렇지도 않아. 뭘 위해 달려왔는지 잘 모르겠다. 자식도 내 맘 대로 안 되고 학교도 재미없고. 취미를 가져보려고 하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아.
내 친구는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이 있고, 테니스를 자주 친다. 그것으로 헛헛한 마음을 달래는 모양이다. 종종 나를 부러워한다는 말도 한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잖아.
친구가 말한다.
그건 맞지.
나는 동의한다.
요즘은 네가 부러워. 나도 그렇게 살 걸. 뭘 위해 그렇게 희생했는지, 모르겠다. 인생 뭐 별 것 있냐,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그러면 되는 거 아냐?
그렇지.
나는 동의했다.
언젠가부터 내 친구는 그 말을 버릇처럼 말한다. 인생 뭐 별 것 있냐. 친구는 자기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 노력 중이다. 물론 그것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내 친구가 볼 때, 나는 나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하면서 살아온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물론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럴 수 있는 비결이란, 내가 이른 나이에 내 인생의 목적을 정했다는 데 있다. 나, 인생의 목적이 있기에 좌고우면 하지 않아 왔다.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이 있어 그 일을 해 왔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미루지 않고 했다. 아마도 내 친구는 내 인생의 그런 점을 부러워하는 것일 테다.
내 친구, 이제 시골살이를 마치고, 수원으로 올라올 예정이다. 아들내미가 올해 대학에 들어가니, 이제 긴 행군이 끝난 셈이다. 아들내미를 대학에 보내면 제수씨와 친구, 둘의 단조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
여행이나 가고, 티네스 치고 즐겁게 살려고.
그래, 좋은 생각이다.
내 친구는 아마도 그렇게 할 것이다. 안 그래도 캠핑, 여행을 즐겨 온 친구다. 다만 인생 뭐 별 것 있냐, 하는 말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내 친구의 말이 의미하는 것은, 내 생각에, 아직 내 친구가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고, 맛있는 걸 먹으며, 건강을 유지하고 사는 것이 내 친구에게 남은 삶이리라.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나는 친구와 종종 식사를 하고, 여행도 간다. 이제 곧 우린 50이 된다. 거의 40년을 함께 친구로 지냈으니, 남은 50여 년도 이렇게 죽 가리라. 친구가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가능성은 낮으나,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운동을 하고, 돈을 모으고, 가족을 챙기는 삶도 나쁘지 않다. 그건, 평균 이상은 되는 일이다.
얼마 안 되지만 연금이 있잖아.
친구는 말한다.
그래, 연금으로 즐겁게 살아라.
나는 말한다.
우린, 아마도 죽는 그날까지 이런 관계를 유지할 것 같다. 친구는 친구의 삶을 나는 나의 삶을. 그리고 친구는 종종 나를 부러워 할 것이다. 나는 재산은 모으지 못했으나 삶의 목적을 이른 나이에 찾아고, 지금도 항해 중이다. 친구는 이 점을 가장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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