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부모들은 조급하고 성급해진다.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이 조급증은 부모를 옭아맨다. 내 아이가 뒤쳐지면 어떻게 할까.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다른 아이보다 성적이 안 나오면 어쩌지.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조급증이다. 그 조급증의 맨 안쪽에는 내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리라. 성적 자체가 목표라기보다는 그저 내 아이가 이 험한 세상에서 올곧게 서서 자기 인생을 잘 개척해 나가는 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대개의 부모는 이 마음을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해 낼지에 대한 매뉴얼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 스스로 이 매뉴얼을 작성할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조급해지는 것이다.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다른 부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다. 일단은 그 방법이 가장 가시적이고, 쉽기 때문이다. 점수는 숫자로 표기되기에, 정확하다. 그만큼 유혹적이고, 만족적이며, 확인 가능하다. 90점은 70점보다 더 확신을 준다. 무언가,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며 안정감을 갖도록 한다. 흔히 부모들이 점수에 올인하는 이유다. 자, 그러나 이 습관에 빠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부모도 아이도 점수의 노예가 된다. 점수의 노예가 되어서 정작 중요한 것을 빠뜨리게 된다. 이것은 점수의 역설이다. 즉 점수는 높고, 성적은 잘나오는데, 석차도 좋은 편인데 막상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은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이들은 하나같이 같은 것에 대해 후회한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내 인생을 나답게 살지 못한 것.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해 보지 못한 것
-목표를 세우고 도전해 보지 못한 것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 것
-너무 조급하게 살아온 것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현재를 살아라! 이는 모든 살아 있는 영혼에 교훈을 주는 말이다. 죽음을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격언은 부모나 아이에게나 모두 중요하다. 성적의 노예가 되어서, 점수의 노예가 되어서 생애 최초의 20년을 낭비하게 되면 그 다음엔 뭐가 남을까? 점수와 성적 빼고는 남은 것이 거의 없는 삶! 그것이다! 아니라고? 아니, 냉정하게 현실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점수의 노예가 점수 말고 가질 수 있는 것은 없다. 인간은 한계가 명확한 존재라,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 돈을 쫓으면, 사랑을 잃을 수 있고,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 명예를 추구하면, 안정된 삶을 혹은 다양한 체험을 놓칠 수도 있다.
성적의 노예가 된 아이들에게는 추억이 없다. 추억!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필수적인 요소다. 관계, 자존감, 가족의 중요성, 놀이, 경험... 이 모든 요소는 어느 한 가지가 결핍되어서는 안 된다고 할 만큼 다 중요하다. 점수를 쫓으면 이것들은 잃게 될 수 있다. 두 가지를 다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충분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 학습만을 강요받은 아이들은 둘 중 하나다. 승자가 된 점수의 노예이거나 패자가 된 점수의 노예이거나. 내가 볼 때 이 두 가지 모두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점수의 노예가 되어 승자가 된다 해도, 명문대를 가서 좋은 직업을 갖고 풍족한 삶을 누린다고 해도, 결핍의 문제는 피해갈 수 없다. 그가 죽는 순간,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때, 후회가 남지 않으리라고 단언할 수 없다. 나는 좋은 점수를 얻고, 명문대를 나왔으며,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풍족하게 살았어! 그러니 내 인생은 후회가 남지 않아! 이렇게 말하리라고 단정하지 말자. 그런 삶을 살아간 이들 대부분이 비슷한 후회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남들이 보기에, 꽤 괜찮은 삶을 산 이도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답게 살아보지 못한 것, 도전해 보지 못한 것, 더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관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내 아이를 가르치는 교육 매뉴얼이란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죽어가는 이들, 이미 죽은 이들이 남긴 말 속에서 얼마든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리라.
-내 인생을 나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자!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해 보며 살아가자!
-목표를 세우고 도전해 보자!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자!
-너무 조급하게 살지 말자!
이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몇 가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사랑과 믿음, 자유와 체험, 학습과 관계(가족/친구)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들 간에 균형과 조화가 이뤄질 때 만들어지는 것이 추억이다.
우리 사회 아이들은 학습 한 가지에 집중하도록 강요되는 나머지 다른 것들로부터는 소외된다. 우리 아이들, 추억이 없다. 이는 부모의 책임이다. 추억이 없는 아이들은 사회와 올바른 관계를 맺어나가기 힘들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추억의 결핍은 자기 자신의 결핍이다. 즉 자기 자신과 두터운 관계를 맺지 못한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타인과 나아가 세계와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오늘날 아이들이 온갖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가지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추억의 결핍에 있다. 이는 관계의 결핍, 자아의 결핍이다. 이런 아이들은 건강한 자아가 없기 때문에 타인에게 다가갈 수 없다. 혼자 밥먹기, 혼자 여행가기, 혼자 잘살기, 혼자 살아남기란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는 바람직한 공동체의 방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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