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가 하기 싫다고 말하면 이렇게 말하라

by 김정은

아이는 자주 말한다.


하기 싫어!


오늘은 가기 싫어!


내 아내는 아이들의 이 말에 반응하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일단 한숨을 크게 내쉬고, 천장을 쳐다보거나, 아이들 눈을 똑바로 들여다본다, 말없이. 그러고는 말한다. 냉정하고 부정적인 어투로. 맨날 그런 생각이면 어떻게 하니?


대개의 부모들이 이런 식이리라. 일종의 훈련, 습관이라는 관념은 부모들을 냉소적으로 만든다. 부모들은 일반적으로 내면에 승리의 형식이란 걸 가지고 있다. 즉 승리란, 그저 이겨내고 또 이겨낸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굳어진 마음은 아이들을 병들게 만든다. 아이는 우선 누구나 알다시피 기계가 아니다. 짐승을 상대로 벌인 수많은 실험에서 얻은 결과는 스트레스가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들이다. 이러한 실험을 교훈 삼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스트레스란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 스트레스는 유기체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즉 스트레스는 적을수록 좋고, 우린 스트레스를 최소화 하면서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야 한다.


부모들이 가진 승리 공식은 바뀔 필요가 있다. 무조건 이겨냄으로써, 무조건 해냄으로써, 무조건 전진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스트레스뿐일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무조건 하는 것은 승리 공식이 아니다. 그것은 스트레스 공식일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하는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이 치듯,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나뭇잎이 떨듯, 대지가 계절에 맞게 순환하듯, 우리 삶도 그렇게 흘러가야 한다. 리듬이 있어야 하고 율동적이어야 한다. 무조건 한다는 승리공식에는 리듬이 없다. 거기엔 그 어떤 율동도 허락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계율과 원칙, 훈육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하면, 아이는 단 것만 먹고 비만에 다다르게 되고, 언제나 놀기만 해 지능을 만들 수 없으리라. 그래서 아이에겐 적절한 크기의 훈련이 요구된다. 그 몫은 어른에게 있다.


그런데 이러한 훈육에는 정도가 있다. 무조건 크고 많다고 해서 좋은 훈육이 아니다. 훈육에는 리듬이 있어야 하고 율동이 필요하다.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면서, 적절한 보상과 대응을 해 주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일관된 법칙은 아이를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부모가 기대하는 것이 10이라면 2나 3 정도는 늘 빈 상태로 놔두어야 한다. 이 빈 공간은 아이가 힘들어할 때, 지칠 때, 좀 쉬고 싶을 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는 기계가 아니라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부모들에게는 이 빈공간이 없다. 그래서 아이를 피곤하고 힘든 상태로 내모는 것이다. 이것은 효율 면에서도 긍정적이지 않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하고,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쉬면서 가야 한다. 단거리는 어떻게든, 아무렇게 대충 가면 되나 삶의 게임은 100년 단위의 게임이다. 서두를 필요가 없고, 길게 내다볼 안목이 요구된다.


나는 아니야!


많은 부모들이 자기는 자녀를 압박하지 않는다고 착각한다. 아니, 그렇지 않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1등을 해야 하고, 중학교 3학년이 되면 웬만한 성적이 나와야 한다고 부모들은 생각한다. 즉 그 때, 바로 그 순간만을 생각한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둔 부모는 이 아이가 대학에 갔을 때 과연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을지 상상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 승부를 보려 하면 아이를 다그치게 된다. 그러나 조금 멀리 내다볼 수 있다면 부모의 태도는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성적을 체크하지 말고, 아이의 태도를 체크해야 한다. 물론 성적, 점수, 중요하다. 60점과 80점은 큰 차이다. 그러나 이를 중요하게 본다고 해도 점수 하나보다는 추이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개월 단위로, 년 단위로 아이가 성장하는 추이가 지금 당장의 성적보다 훨씬 암시하는 바가 크다. 대개의 부모들은 이 점을 간과한다. 조급해지고 서두르는 이유다.




DALL·E 2024-01-26 11.01.19 - A realistic painting of a happy father and daughter enjoying a moment together. The father is smiling warmly, looking at his daughter with affection. .png



내 생각에, 중학교 레벨까지는 성적보다 경험, 자유, 놀이, 관계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성적을 손 놓고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에겐 성실성과 지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두 가지 지표는 아이의 성공을 예측하는 데 있어 가장 정확하다. 다만, 너무 일찍 서둘러서는 곤란하다. 천천히, 제대로, 가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가 추억을 쌓으면서 행복을 느끼면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중학교 레벨까지는 추이를 더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초등학교 5학년과 중학교 2학년 때 성적을 전체적으로 비교해 봤을 때 10퍼센트 나아졌다면, 그 아이는 노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1등을 못 했다고 해서 그 아이가 실패자가 아니다. 실패자로 낙인 찍으면, 우선 말부터가 부정적으로 나간다.


넌 왜 그 모양이니?


넌, 공부 쪽으로는 안 되겠다.


넌 노력을 안 하는구나.


이런 말, 부정의 씨앗이 되는 언어는 아이를 병들게 한다. 아이를 주눅들게 하고, 학습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 학습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니다. 학습의 핵심은 태도와 마음에 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지금 나는 잘하고 있다는 믿음,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즐거움에 대한 감정, 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나의 부모는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믿어줄 것이라는 확신, 이런 것들이 점수 하나보다 몇십만 배는 더 중요하다.


추이를 볼 줄 아는 부모는 서두르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에게 여유와 신뢰를 주며 기다릴 줄 안다. 지금 당장보다 1년 뒤, 3년 뒤의 모습을 그릴 줄 안다. 아이가 학습을 강요받는다는 느낌을 갖지 않으면서 노력하고 싶다는 의지를 심어줄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부모. 그런 부모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승패는 인생의 긴 터널을 거치며 결정된다. 중학교, 고등학교 레벨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삶은 무지하게 길게 이어지는 롱텀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승리하는 인간으로 길러내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부모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부모가 이 긴 게임을 지도할 역량이 없다면, 아이는 불행해지고, 억압받고, 잘못된 관념을 가지게 된다. 명문대에 들어갔으나, 생각이 똑바르지 않은 아이들은 널렸다. 어느 누구도 그런 아이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잘못 교육 받은 대가다.


오늘 하루는 쉬어가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돼라. 쉬어가는 방법을 모르면 멀리 갈 수 없다. 더구나 스무 살이 되면 아이 혼자 나아가야 하는데,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 스스로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쉬겠다는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 성실성이란 무조건 하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실성이란, 포기 없이 꾸준히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 안엔 쉼이란 정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쉬지 않고 어떻게 꾸준히 가는가?


나는 오늘도 아이에게 말한다. 쉬고 싶을 땐 꼭 아빠한테 말해주렴. 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아라. 너는 평생 이 게임을 해야 하니까 서두를 필요가 없단다. 너 자신을 믿어야 한다. 너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걸 믿어야 한다. 아빠는 네가 할 수 있다는 것, 반드시 해낼 것이라는 것, 큰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단다.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구독은 작가를 춤추게 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