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근 후 장을 본다.
아침 일찍 검색하고 머리를 굴려 오늘 저녁 메뉴를 선정하고 가족 단톡방에 공지를 한다. 오, 굿! 이란 반응이 나오면 합격이다. 일하면서는, 오늘 요리를 어떻게 할까, 궁리한다. 그리고 장 볼 거리를 대충 메모해 둔다. 나는 아침 7시쯤 출근하기 때문에 퇴근이 빠르다. 조금 일찍 퇴근하면 장점이 있다. 한산한 마트에서 장을 볼 수 있는 것도 그중 하나다. 나, 요즘 그 재미에 빠져 있다. 물론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기도 하지만, 무슨 일이든 그렇지 않은가.
무엇이든, 주도적으로 하자!
내가 원해서 할 때, 기쁨도 있고 행복도 배가 되더라!
개인적으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말도 있다. 도망갈 수 없다면, 즐겨라. 그 말 좋다. 나는 그런 신조로 살아간다. 늘 가슴 속으로 머리로 리마인드 한다. 둘째 딸이 지금 초6이니 이제 딸들과 살 부대끼며 웃고 행복하게 동거할 날도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나, 아이들이 대학을 가면 출가시킬 생각이다. 기숙사가 있는 학교라면 더욱 좋으리라. 어찌 될지 알 순 없으나 일단은 계획이 그러하다. 아이들도 그렇게 마음먹고 있다.
스무 살이 넘으면 몸도 마음도 독립해야 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말해왔다. 부모 역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어쨌거나, 그래서 장을 보는 일은 즐겁게 하려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말을 건넸다.
식비가 좀 많긴 해, 오빠.
그래?
응. 몰랐어?
외식, 거의 안 하는데도?
오빠, 백화점에서 장 보잖아. 그니까 비싸지.
음... .
백화점에서 장을 보는 건 맞는데, 나는 나름대로 현명한 소비를 하려 노력하는데, 아내가 그렇게 말하니 조금 기분이 상했다. 아, 이런 느낌이군! 음식을 하는 사람들은 공감하겠으나, 장을 보다 보면, 무조건 싼 게 장땡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고추장도 물론 싼 게 있다. 그런데 이왕이면 국내산 고추로 만든 것을 고르게 된다. 아이들이 먹는 거니까. 야체도 이왕이면 유기농으로 고른다. 비싸지만 양을 덜 넣으면 가격은 비슷하다. 그런데, 아내는 이 마음을 몰라주는 듯해서... .
오늘은 비가 내리네. 음, 이런 날엔 고추장 찌개지.
오늘 오전, 가족 단톡방에 메뉴를 올렸다. 아내로부터 답글이 달렸다.
좋아.
애호박, 양파 같은 건 있고, 감자랑 돼지고기를 좀 사야 한다. 비싼 거 산다고 핀잔 들을까봐 벌써부터 걱정인데, 어쩌랴. 아무튼 싸게, 이왕이면 신선한 것으로 사야 한다.
고고!
요리하는 아빠는 즐겁다. 아니, 즐겁다고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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