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아주 긴 시간 동안, 아마 두 달 이상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구독자 여러분들은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궁금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네, 사실 별일 있었습니다. 하하. 이전에 제가 말씀드렸듯이, 어느 날 문득 제게 번아웃이 왔고 여전히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내게 웬 번아웃?
저도 그것이 무척 궁금합니다. 물론 병원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증세만으로 보면 병원에 가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했습니다. 제가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면, 아마도 병원의 힘을 빌려야 했을 겁니다. 아니,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해도, 병원에 가는 게 나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버텼네요. 무슨 깡인지, 네가 이니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짚이는 이유는 있습니다. 올 1월부터 거의 두 달 간 꼬박 책을 한 권 썼기 때문이죠. 책은 3월 중에 출간되었고, 북토크도 조촐하게 진행했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아마도 그 책 쓰는 일 자체가 저에게는 버거웠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더 깊이 들어가, 지난 20년 동안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은 채 꼬박 글을 쓰고 장편소설을 써 내고, 끊임없이 쉬지 않고 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20년의 글쓰기 피로가 이번 책 집필로 번아웃을 일으켰을 수도 있습니다. 뭐가 됐든, 이야기는 마찬가집니다.
저는 20년 이상 글을 썼습니다. 세 권의 책이 출간되었고, 첫 책은 만 부를 넘기며 나름 인문정치 분야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이 붙었죠. 그러고 나서 10년 만에 낸 두 번째 책은 소리 없이 지나갔고, 이번에 세 번째 책을 냈네요. 그동안 저는 세 권의 책 출간뿐 아니라 다수의 장편소설을 썼고, 단편도 10편 이상 썼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그 책들을 조만간 읽어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자, 그건 그렇고.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 그래서 제 세 번째 책 출간 이후 첫 인세가 들어왔네요.
달랑, 18만원. 하하.
3월에 책이 출간되고 나서, 5월인 어제, 첫 인세가 입금되었습니다. 베스트셀러들, 인세만 몇 억, 몇십 억 번 작가들에 비한다면, 초라한 액수인데, 저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 그 숫자가 그렇게 귀하고 반가운지요.
저는 책을 쓰고자 하는 독자들, 글을 잘쓰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글을 써 왔습니다. 비단 글쓰기뿐 아니라 그 어느 분야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텐데, 무언가 해낼 만한 능력, 기술, 역량을 갖추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아니, 살을 도려내고 뻐를 깎고 그야말로 피땀을 쥐어짜낼 의지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건축이든, 회화든, 음악이든, 스포츠든, 정치든, 의학이든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이는 동일한 것입니다. 물론 대충 해 놓고 결과를 얻는 이들도 흔히 보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을 뿐만아니라 사실은 별 사건도 될 수 없습니다. 높이 올라가려면 깊이 파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장에 찍힌 18만원 액수를 보고 좀 과장하면 얼마나 감동했는지,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그 감정은 저조차도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노력의 대가치고는 그리 큰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감동하고 있지? 하하하.
어떤 일은 목표가 너무 높아서, 시간이 걸립니다. 우린 이 진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럴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해진답니다. 그리고 다시 오늘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됩니다. 저에게 번아웃은 너무나 지독한 놈이었습니다. 감정이 사라지게 만들고, 기억까지 사라지게 만들어 놓더군요. 기억이 사라지니 감정이 사라지고, 감정이 사라지니 기억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목표도 날아가 버리고, 의지와 용기도 메말라 버리더군요. 번아웃은 그런 것입니다. 자신이 걸어 온 길을 일정 기간 동안 지워버리는 바이러스, 그것이 번아웃입니다. 인간의 감정이란 대부분 기억에서 비롯됩니다. 우린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 웃게 되고, 울게도 됩니다. 우리에게 어떤 감정이 있다는 것은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드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10년, 20년 변함없이 도전할 수 있는 것도 기억 덕분입니다. 기억이 사라지면 내가 세워 두었던 목표도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방향을 잃는 일입니다. 번아웃은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강하고, 무서운 녀석입니다.
어쨌든 저는 기다리고 버티고 버둥대며 이 녀석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장에 찍힌 18만원을 보며 좋아라 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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