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04. 잡다한 이야기

나 사용 설명서; 긴급조치 편

by 세령

나를 구성하는 어떤 나사 하나가 도망갔는지 두 달가량 끊임없이 몸이 아팠다. 몸살을 이겨내면 감기, 감기를 이겨내면 방광염, 방광염이 나으면 또다시 몸살 그렇게 주마다 다른 병을 끼고 살기를 반복했다. 점점 더 무기력해지는 나에게 글을 투고하는 플랫폼에서 계속 알림을 보내왔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꾸준히 반복해야... 어쩌구 저쩌구"

"나도 알아..."

그렇게 중얼거리고선 휴대폰을 닫았다. 핑계겠지만 글을 쓰기에는 손톱만큼의 여력도 없었다.

그러나 아프단 이유로 계속 일을 안 나갈 수는 없었기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은 꾸역꾸역 했다.

그 날은 좀처럼 상쾌해지지 않는 기분에 일광욕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카페 앞에 앉아 해를 맞으며 커피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저 멀리 파란 하늘 위 커다란 구름 중앙에 두 개의 네모난 구멍이 보였다.

'꼭 창문 같네. 괜히 더 눈이 부시다.'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시큰해진 눈가에선 마구잡이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사실 흐르는 눈물이 당황스럽진 않았다. 건강하지 않은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엔 만무하고, 마침 3년 반에 접어든 회사 생활에서 미숙하지도 노련하지도 않은 자신의 쓸모를 의심하던 참이었다. 그렇게 자존감이 바닥을 쳐 우울감에 뒤덮인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건 평소처럼 수다를 떨고 햇빛 아래 광합성을 해서 해결될 감정이 아니었다. 때마침 걸려온 전화에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차라리 내 자신한테 라도 났으면 좋겠어. 너무 무기력해'

그렇게 전화를 끊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 채로 카페 직원에게 커피를 받아 들고 나와 커피를 들이켜니 약간 정신이 들면서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건 위급상황이다. 내가 나를 구해야 해.'

그래서 긴급 처방을 내리기로 했다. 다행히 나에게는 인생의 빅데이터를 통해 마음 속에 써두었던 '나 사용설명서'가 있었다.


[나 사용설명서 긴급 조치 1항]

음에는 '아무것도 안 하기' 처방을 내렸다.

이틀 도는 회사에서도 최소한의 일만 하고 칼퇴를 했다. 아무 약속도 없이 집으로 재빠르게 가서 밥을 먹고 잤다. 충분히 자고 눈을 뜨면 다시 벼운비만 하고 출근을 했다. 말그대로 최소한으로 행동했다.


[나 사용설명서 긴급조치 2항]

두 번째는 '맛있는 밥 대접하기' 처방이 필요하다.

대접은 물론 내가 나 자신에게 했다. '아무것도 안 하기' 기간에는 기억에 남는 음식이 없을 정도로 대강 편의점 음식으로 채웠는데 조금 회복이 되니 배를 따뜻하게 채우고 싶었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손님인 나 자신을 푸대접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마켓컬리로 신선한 재료를 집 앞에 주문해 두었다가 저녁으로 가자미 솥밥을 해 먹었다. 나를 귀하게 대하니 마음이 다시 데워지고 있었다.


[나 사용설명서 긴급조치 3항]

지막은 '재밌는 운동하기' 처방이다.

배를 잘 채워넣어 기운을 좀 더 차리니 몸을 움직일 수 있겠다 싶었다. 견뎌내는 느낌의 운동보다는 즐겁고 새로운 운동이 필요했다. 새로운 운동은 새로운 몸의 움직임을 이끌어 내므로 '내 몸이 이렇게도 움직일 수 있구나'하면서 흥미가 생긴다. 그래서 고민 끝에 수영과 플라잉요가를 도전했다. 물에 뜨지도 못하는 맥주병인 나는 물에 뜨는 것을 목표로 물에도 들어가고, 플라잉 요가를 체험하면서 몸을 유연하게 풀어주니 꽤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잡고 움직이는 것만으로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 드디어 내가 나를 살렸다.


이렇게 긴급조치로 꽤나 괜찮은 상태를 되찾았다. 아픈 나에게 누군가 괜찮냐고 물어볼 땐 영혼 없이 '괜찮다'라고 대답했지만, 이제 정말 괜찮았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메뉴얼은 회사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도 꼭 필요하다. 그래서 평소에 자기자신을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나를 잘 운영하기 위한 메뉴얼을 미리 준비해두어야 한다. 거창한게 아니라 이렇게 살아내면서 살기 위한 대응 방안이 다양해지는게 '삶의 지혜' 아닐까 생각한다.


지혜로운 세령 생활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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