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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령 Sep 21. 2023

Chapter04. 잡다한 이야기

나를 구하는 방법

나를 구성하는 어떤 나사 하나가 도망갔는지 두 달가량 끊임없이 몸이 아팠다. 몸살을 이겨내면 감기, 감기를 이겨내면 방광염, 방광염이 나으면 또다시 몸살 그렇게 주마다 다른 병을 끼고 살기를 반복했다. 점점 더 무기력해지는 나에게 글을 투고하는 플랫폼에서 계속 알림을 보내왔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꾸준히 반복해야 늘어요!"

"나도 알아..."

그렇게 중얼거리고선 휴대폰을 닫았다. 핑계겠지만 글을 쓰기에는 손톱만큼의 여력도 없었다.

그러나 아프단 이유로 계속 일을 안 나갈 수는 없었기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을 했다. 

좀처럼 상쾌해지지 않는 기분에 일광욕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카페 앞에 앉아 해를 맞으며 커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저 멀리 파란 하늘 위 커다란 구름 중앙에 두 개의 네모난 구멍이 보였다.

'꼭 창문 같네. 괜히 더 눈이 부시다.'

생각함과 동시에 시큰해진 눈가에선 마구잡이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사실 흐르는 눈물이 당황스럽진 않았다. 나라는 인간은 건강하지 않은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엔 만무한 사람이고, 마침 3년 반에 접어든 회사 생활에서 미숙하지도 노련하지도 않은 자신의 쓸모를 의심하던 참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쳐 우울감에 뒤덮인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건 평소처럼 수다를 떨고 광합성을 해서 해결될 감정이 아니었다. 때마침 걸려온 전화에 대고 걱정스러운 말투의 상대방에게 말했다. 

'차라리 화가 났으면 좋겠어. 너무 무기력해'

그렇게 전화를 끊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 채로 카페 직원에게 커피를 받아 들고 나와 커피를 들이켜니 약간 정신이 들었다. 동시에 생각했다.

'아, 이건 위급상황이다. 내가 나를 구해야 해.'

그래서 긴급 처방을 내리기로 했다. 인생의 빅데이터가 써둔 '나 사용설명서'를 토대로 3가지 처방을 내렸다.


첫 번째로 '아무것도 안 하기' 처방을 내렸다.

이틀정도 회사에서도 최소한의 일만 하고 칼퇴를 했다. 아무 약속도 없이 집으로 재빠르게 가서 밥을 먹고 잤다. 충분히 자고 눈을 뜨면 최소한의 준비를 하고 출근했다.


두 번째는 '맛있는 밥 대접하기' 처방이었다.

대접은 물론 나 자신에게 했다. 요즘은 배를 채우기 위해 대강 사 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기억에 남는 음식이 없을 정도였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손님인 나 자신을 푸대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길에 장을 봐서 집 앞에 주문해 두었다가 가자미 솥밥을 해 먹었다. 나를 귀하게 대하니 따뜻한 밥에 마음도 따뜻해졌다.


세 번째는 '재밌는 운동하기' 처방이다.

기운을 좀 차리니 몸을 움직여줘야 했다. 견뎌내는 느낌의 운동보다는 즐겁고 새로운 운동이 필요했다. 새로운 운동은 새로운 몸의 움직임을 이끌어 내므로 '내 몸이 이렇게도 움직일 수 있구나'하면서 흥미가 생긴다. 그래서 고민 끝에 수영과 플라잉요가를 시작했다. 물에 뜨지도 못하는 맥주병인 나는 물에 뜨는 것을 수영의 목표로 삼고, 몸을 유연하게 풀어주고 즐겁게 땀내는 것을 플라잉 요가의 목표로 삼았다.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목표를 잡고 움직이는 것만으로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


이렇게 전부 수행하고 나니 꽤나 괜찮은 상태가 되었다. 아픈 나에게 누군가 괜찮냐고 물어볼 때 영혼 없이 '괜찮다'라고 대답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게, 이제 정말 '괜찮다'라고 말해도 마음이 아프지 않다. 평소에 자신을 관찰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메뉴얼은 회사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도 꼭 필요하므로 평소에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나를 잘 운영하기 위한 메뉴얼을 쌓아두어야 한다. 그렇게 대응 방안이 다양해지면 우리는 그것을 '삶의 지혜'라고 부른다. 모두가 감정의 재난 상황에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길 바란다. 사는 동안 대부분 즐거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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