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가 안 체질
내게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멜로가 체질"이라고 답한다. 이병헌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만들었다는 그 드라마의 대사가 좋아서 이제는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로 보았다.
대학생 때 방구석에서 본방송으로 시청했던 그 드라마를 6번째 돌려보는 순간에는 내 나이가 어느새 주인공들과 같은 서른 즈음이 되었다.
그리고는 드라마 주인공인 진주처럼 연초부터 이별을 했다. 너무 사랑해서 외면해 왔던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어떤 거리를 이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겠다 싶어 이별을 택했다. 혼자가 되면 외롭겠지만 둘이어도 외로운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에 목구멍에서 나오기 어려워하던 이별의 단어들을 애써 꺼내 뱉어냈다. 이별의 순간에도 그는 담담했고, 본인의 문제를 인정해서 붙잡을 수가 없다며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 이별조차도 싫었다. 세상 가장 가까웠던 우리가 남이 되었던 그 순식간에도 담담했던 그가 싫었다. 전화를 끊고선 의지와 상관없이 수도꼭지처럼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면서 멜로가 체질 속 진주가 이별 당시 되뇌었던 대사가 계속 맴돌았다.
정말 다 싫어서 헤어졌는데... 정말 다 싫어서 헤어졌는데...
이후에도 극 중 이별 후의 진주처럼 나도 참 별로였다. 술을 마시고, 울고, 다시 웃으며 친구에게 털어놓다가 울고, 또 웃고... 무한히 반복했다. '차라리 그가 바람을 피우거나 쓰레기 같은 짓을 했다면 내가 덜 힘들었을 텐데.' 생각하면서.
아, 물론 취해서 그에게 전화도 했다. 먼저 이별을 말한 주제에 더럽게 질척거리는 전 여자친구 역할을 충실히도 수행했다. 그 질척거림을 다 받아내는 그가 원망스러워 더욱 괴롭혔다. 그를 괴롭히는 동시에 나를 괴롭히는 것도 그만둬야겠다 생각할 때 즈음엔 망가진 내 몸과 마음을 침대에 뉘이고는 또 다른 진주의 대사를 떠올렸다.
나는 머리통이 단단해! 팔꿈치도 단단해! 무르팍도 단단해!
근데... 마음은 안 단단해. 그럼 별로야?
떠올린 대사에 혼자 격분하며 소리 질렀다. "그럼 별로지! 완전 별로지! 정상이 아닌데!" 한숨만 나왔다.
그다음 날부터는 정상인인척 밖에서는 '사회적 나'를 열심히 운용했다. 그러다가 함께한 시간만큼 서울 곳곳에 널브러진 우리의 추억 덩어리들을 발견하면 멈칫하다가도 이내 괜찮아지는 날이 오겠지 하면서 버텼다. 버티다 보니 괜찮아졌다.
여전히 사랑하는 방법은 모른다. 어떻게 시작하는 건지, 어떻게 유지하는 건지 사랑을 모르던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 그래도 또 할 거다. 또 누군가를 만나 이번이 마지막 사랑이기를 바라며 마치 처음 해보는 사랑처럼 온마음 다해 해낼 거다. 내 사랑도 멜로가 체질처럼 해피엔딩이라고 믿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