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할머니
엄마는 엄마라서 애틋하지만 밉다.
나한테 바라는 게 너무 많아서 밉다. 늘상 하지 말란 것도 많고, 해야 한다는 것도 많고, 평생을 내게 바라기만 해서 밉다. 그녀가 바라는 대로 크는 게 내 인생의 목표라고 굳게 믿었던 어린 시절을 다시 돌아보면, 사실 그때도 나는 내내 그녀를 미워했으나 동시에 그녀를 안쓰러워했기에 사춘기 없이 잘 자란 착한 딸 역할을 자처하며 공생했다. 너무 과분한 역을 맡은 탓이었나. 엄마가 버거운 딸이 되었다.
할머니는 할머니라서 애틋하고 좋다.
그녀는 늘 나에게 바라는 게 없어서 좋았다. 내가 일어나 간식이라도 가져오려 하면 "너는 내가 보는 꽃이야. 거기 그대로 가만히 있어." 하시는 게 좋았다. 내게 무언가 되라고 하지 않아서 좋았다. 돌아보면 할머니는 내가 다칠 뻔했던 적 말고 한 번도 내게 화를 낸 적이 없다. 하지만 스무 살 무렵부터 손녀는 멀리 산다는 핑계로 할머니를 자주 뵙지도 못했다. 받은 사랑이 좋기만 해서 당연했나. 그렇게 파렴치한 손녀가 되었다.
그런데 엄마는 할머니를 또 미워한다.
그녀는 엄마에게도 무언가 되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를 친적집에 맡길 때에도 그녀는 그저 가만히 두고 갔고, 할아버지가 공부를 잘했던 엄마 대신 가출만 죽어라 해대던 삼촌을 대학에 보내겠다고 했을 때에도 그녀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엄마가 뭐가 되길 바라지 않았다. 엄마도 계속 엄마가 미웠다.
가족은 뭘까.
한 다리 가까우면 밉고, 한 다리 멀면 애틋한 것일까. 내가 아는 가족은, 서로 떨어져도 차마 놓지는 않으면서 가까우면 또 죽어라고 미워하는 그런 것이다. 죽어라 미워하다가도 한쪽이 불쌍해지는 건 또 두 눈뜨고는 못 보는 그런 관계다.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관계.
수십 년을 부딪히면 다 그렇게 되는 건지 참.
그래도 "가족이란 뭘까"에 대해 꼭 답을 해야 한다면, 나는 '내가 아는 가장 못생긴 사랑'이라고 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