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하면 초조합니다.
대기가 아주 길었던 타투샵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면서 지루함에 몸서리치던 순간, 그곳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내 무릎에 사뿐 올라왔다. 내 무릎을 꾹꾹 거리더니 이내 웅크려 앉아 졸기 시작했고,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무릎에서 들숨날숨을 전하는 따뜻한 생명체에 잠이 다 달아난 건 잘 된 일이었지만 옴짝달싹 못하게 된 내가 문제였다. 전해지는 온기에 심장은 벅차오르고, 마구 쓰다듬으며 예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졸고 있는 아이를 깨울까 가만히 볼 수밖에 없어서 나도 고양이와 같은 리듬에 새근새근 숨 쉬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나를 이렇게 고장 나게 만들어 놓고 태연히 조는 고양이가 얄밉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 순간에 '애틋하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어떤 대상이 좋아서 손에 꽉 쥐고 안 놔주고 싶지만, 동시에 너무 세게 쥐어 부서질까 하는 두려움에 차마 힘주지 못하는 감정이 애틋함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
애틋하다; 섭섭하고 안타까워 애가 타는 듯하다.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섭섭하고 안타깝다는 감정이 섞인 것일지는 몰랐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 안타까워야 애틋하다는 감정이 생긴다.
일하러 가야 해서 아이를 혼자 두고 출근하는 부모는 아이가 애틋하고, 지금은 다시 볼 수 없는 못 다 이룬 첫사랑이 애틋하고,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너무 낡아 버려야 할 때 애틋하다.
중요한 건 여기서 '애'는 사랑이 아니라 애가 탄다고 할 때 그 '애'이다.
애; 근심에 싸여 초조한 마음속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람은 누구나 너무 좋으면 초조해지는 걸까. 그렇다면 평생 내가 담담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아껴서, 초조해져서, 놓칠까 두려워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기를 노력하는 삶이라면 좋겠다. 그래서 애틋한 것들을 꽉 쥐지 않아도 되려 모두 내 손을 살풋 잡고 있어 주면 좋겠다. 내가 계속 애뜻하고, 누군가 날 보며 애뜻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