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인 사람은 바보가 돼
나는 내가 무척이나 성숙한, 어른의 연애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만나면 즐겁고, 떨어져 있어도 최선을 다하고, 그러나 각자의 시간은 존중하는.
그러나 나는 사랑을 대충 했을 뿐이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너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남들 보기에 눈꼴 시려울 정도로 서로 좋아죽는 연애이지만 집착의 정도로 굳이 애정도를 견주어 보자면 그보다는 내가 더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이전까진 분명히 꽤나 쿨한 연애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연애 역사를 통틀어 역대급으로 다정한 사람을 만났는데도 내가 그를 너무 좋아하니까 잠깐이라도 그가 없는 시간이 생기면 부아가 날 정도다. 머리로는 아주,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유로 그가 고작 1-2시간 연락이 안 되었을 때에도 그가 없는 시간을 못 견딜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런 내가 못나서 실망하고, 또 못나진 내가 그 때문인 것 같아서 괜히 그를 미워한다. 그러다가 혼자였던 시간을 잘 견뎌낸 뒤에 그를 마주하면 혼자 미워했던 시간이 미안해서 괜히 그에게 사랑한다고 한 번 더 말한다.
말이 되나! 난 연락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던지, 혼자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친구들이 그런 집착 때문에 싸웠던 이야기를 말하면 나는 늘 상대편에 섰다. 그런 내 태도에 가장 열받아했던 건 우리 언니인데, 아마도 꼭 네가 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호되게 고생해 보라던 친언니의 저주가 드디어 나에게 통한 듯하다.
이거 뭐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는다. 명상을 다시 시작할 때가 된 듯하다. 마음을 비우고, 나라는 독립적 개체에 집중하면서 되뇌인다.
"그와 나는 타인이다... 그와 나는 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