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
인턴 4일차 아침
회사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다시 한 번이곳이 아직 낯설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정신없이 전화받는 소리, 누군가 빠르게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 익숙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세계의 언어처럼 들렸다.
그리고 오늘 내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업무..전문직 대상 홍보 PPT 제작.
도메인에 대한 이해도도 적고 회사생활에 아직 서툰 내가, 마치 모르는 나라의 역사를하루 만에 정리해 발표하라는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타겟층이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지 감을 잡으려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정보를 찾지 못했다. 검색창의 커서가 깜빡이는 모습조차 내 조급함을 증폭시켰다. 가슴 한쪽에서 막막함이 몰려왔다. 내가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분명했다.
그러다 사수님이 조용히 내 책상에 이전에 발표자료로 사용했던 자료를 참고하라고 하셨다. 회사에서 컬러로 프린트해둔 발표자료, 리플렛 등 사수님의 투자한 시간이 눈에보였다. 페이지를 넘기자 실무자의 경험이 문장 사이마다 스며 있었다. 그 흔적들을 따라가며 새로운 구성을 만드는 작업은 마치 한밤중에 손전등 하나 들고 알 수 없는 지도를 해독하는 느낌이었다.
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 여러 번 뜯어고치고 표현 하나를 위해 한참 고민했다. 글자를 눌러 입력하는 손끝에서조차 긴장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묘한 힘이 생겼다. ”나 지금 일을 잘하고 있는거 아냐?“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완성됐다고 생각한 순간, 또 다른 파도가 밀려왔다.
바로 부장님에게 보고를 해야되는 일이다. 보고를 하면서 부장님을 바라보았을때 화면을 바라보는 부장님의 표정은 어두웠다. 나는 한 문장씩 부장님에게 보고를 하면서 화면을 넘길 때마다 긴장이 되었다. 수정 요청을 많이 하셨고 나는 문장을 다시 쓰고 문단을 다시 쪼개고 표현을 바꾸고 간추리려고 애썼다.
부장님의 수정 요총은 이러했다.
“이건 좀 더 명확해야겠네.”
“여기는 논리가 이어지지가 않아.”
그 말들이 날카롭게 들리면서도 한편으로내가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 같았다. 그렇게 몇 번이고 수정하고 되돌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그때 들린 부장님의 한 마디.
“내일 외근 준비해요. 외근가는 회사
로비에거 내일 아침10시에 보는걸로”
순간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또 다른 낯선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의 업무도 벅찼는데 내일은 또 다른 현장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니... 무게감이 어깨를 눌렀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 작은 기대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4일차가 끝났다.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오늘 내내 씨름했던 ppt에 익숙해져 뿌듯했다.
하지만 이제 집에 가서 내일 외근에 필요한 준비를 할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퇴사가 마려웠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회사의 업무를 배워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내일 다가오는 외근이 두렵다. 여러가지 마음이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