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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아빠 Jul 17. 2023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는데...

롱텀 히말라야 산행기_1

 얼마 전에도 큰 사고가 있었다.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 가지 못하는 게 그 산이지 않나 싶다. 오히려 갑작스레 찾아온 여유에 맞춰 급히 가본다거나 인생에 찾아온 역경의 시기 혹은 방황의 시기에 갈 확률이 큰 산. 나 역시 마찬가지로 생에 처음 찾아왔던 고난의 시기에 다녀왔다.


 다녀온 지는 벌써 8년이나 지났다. 2015년 5월 무렵. 서른살 중반의 나는 잘못된 견적으로 인한 인테리어 공사로 인해 막심한 손해를 입었다. 내가 부른 인부들의 품을 정리하고 나니 어렵게 들었던 청약적금도 그나마 수중에 있던 약간의 돈도 그리고 애지중지하던 차도 팔고 난 뒤였다. 한동안 우울감에 빠져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지내던 내게 친구가 작은 공사를 맡겨주었다. 고마운 배려였다. 공사를 마치고 나니 딱 한 달 생활비 정도의 돈이 남았다. 하나 내 마음속에는 그 한 달을 살고 난 후 다음 달의 가능성을 준비할 희망이 없었다.


 그때 인터넷에서 본 몇 장의 사진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곳은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별과 같았다. 바위와 돌, 그리고 눈으로만 이뤄진 지형은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저곳에 다녀온다면 실패감으로 바닥까지 내려앉은 내 삶에 '내가 해냈다'라는 동기의 씨앗을 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6일 후 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비행기였을 것이다. 수중에 여윳돈이 많지 않아 중간기착지에서 18시간을 체류하는 싼 티켓을 끊었다. 체류지인 수완나품공항에서 배낭을 베고 누웠다. 여태 꽤 많은 여행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여행은 진정한 베가본더가 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붙여 두시간도 못잤던 선잠이지만 그것 자체로 고양되는 밤. 혼자인 해외여행도 처음이었고 목적도 다른 여행이었다.


 네팔로 들어가는 비행기에서도 이 여행은 특별하다는 듯이 사건사고가 생겨났다. 뒤에 앉은 여성이 부자연스러운 소리를 내더니 숨을 쉬지 못해 쿵하고 쓰려졌고 기내에 있던 다른 승객이 임시조치를 하며 급박한 상황을 지냈다. 이래저래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하지 못해 몽롱한 기분 속에서도 운 좋게 기체의 오른편에 앉은 탓에 비행기의 고도와 엇비슷한 히말라야 산맥을 구경하며 어느덧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네팔행 비행기를 탈때는 가능한 오른쪽에 앉으면 좋다. 생에 한번 보기 힘든 풍경을 선물한다.


 네팔은 극빈국중 하나로 분류된다. 극빈국의 특징 중 하나는 도로나 수도, 전기 등 기반시설의 빈약함이다. 포장된 도로는 큰 도로말고는 거의 없으며 비록 포장도로라도 그 상태가 열악하다. 우리가 쉽게 여행할 수 있는 태국이나 필리핀, 베트남 등의 나라보다도 한 수 아래의 모습이다.


 하나, 이 나라에 당도한 관광객들은 주변의 다른 아시아 지역의 나라들에 비해 눈빛이 사뭇 다르다. 그리고 네팔을 방문하는 유럽 및 북미인들의 숫자는 꽤나 많다. 그들이 왜 이곳에 오겠는가? 바로 산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바닷가를 품고 풍부한 관광인프라를 가진 나라들의 여행객들과 이곳의 여행객들은 그 목적과 바람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야 비행기로 8시간 정도 거리의 나라지만 북미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을 보러 오려면 경유를 통해 15시간 이상을 와야 할 수도 있는 거리다.


 그들 역시 어렵게 온 곳이기에 눈빛에는 세상 가장 높은 곳을 맛보기 이전의 기대감과 경외감이 서려있다. 흔히 모여 있는 카페나 펍에서도 주변의 다른 나라들에서 볼 수 있는 마시기 위해 마시는 풍경보다는 노트북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정리하는 모습, 모임과 단체의 의기투합, 부부 혹은 연인들이 동반으로 일정을 준비하며 유대감을 즐기는 모습이 더 눈에 띈다. 그래서 이곳의 여행은 특별하다. 굳이 도착한 공항 뒤 멀리 보이는 설산들은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처음 보는 높이의 산맥은 시각적으로 착시를 일으키는 것처럼 생소하다.



 흙먼지 날리는 도심의 도로들을 통과해 찾아가는 숙소는 흔한 관광지의 그것과는 다르다. 꽤 비싸고 좋은 호텔이라 해도 인프라의 부족에서 오는 특유의 허름함이 있다. 우리나라의 70년대 정도의 향수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시끄러운 적막함. 슈퍼마켓보다는 소위 말하는 '점빵'수준의 식료품점이 많고 충무로 일대에도 이제는 잘 보이지 않는 '다 파는' 전자제품 취급가게가 있다.




 혹시나 네팔행을 염두에 둔 독자에게 한국에서 값비싼 의류와 장비를 사 오지 말라고 하고 싶다. 현지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여행한철 입고 장터에 내놓은 수많은 물건들이 중고취급점에 쌓여있다. 물론 아주 고품질의 물건들은 아니나 트레킹 정도에는 충분히 사용이 가능한 물건들이다.  나도 가기 전에 필수적이라 생각해 가져간 것들이 있다. 하나 대부분은 현지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네고를 더해 구매가 가능하다. 샵에들러 가져가지 못한 침낭과 선글라스 등을 사며 산행이전의 시간을 보냈다. 숙소에서 포터와 가이드를 소개받아 대략의 인터뷰를 거친 후 다음날 새벽에 만나기로 하면 대략의 그날의 일정이 끝이 난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숙소 앞마당에 나와 사과를 한입 베어 먹은 그 맛이 생생하다. 작지만 맛있는 사과였다.


한국인 민박을 이용했다. 비교적 여행에 대한 도움을 쉽게 전달해준다.


 10월의 계절이지만 풍경은 늦여름의 향취를 전하는 마당에 앉아 멀리서 들리는 카트만두 시내의 다양한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보름이 넘는 긴 일정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히 예상하지도 못한 채로 마치 어릴 적 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맡을 수 있던 매캐한 도시냄새와 더없이 맑은 성산의 공기가 섞인듯한 특유의 향취에 젖어 나무그늘에 앉아있던 그날의 기억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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