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상담이 나에게 의미 있었고 감사했는데 어째서 이번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말이 너무 빠르고 많다는 지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고민이 없어서 일까.
지난 상담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광역버스에서 2시간을 내내 상담내용을 복기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면 오늘은 딱히 쓸 내용이 없다.
나는 여전히 나로 존재하고 3주 만에 뇌구조가 아무 문제없이 깨끗한 긍정적으로 바뀌진 않았을 텐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눈에 보이는 답을 찾는 스타일인데 이곳은 천천히 나를 알아가는 곳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상담하는지 알 길이 없어서 몇 가지 여쭤보다가 든 생각은
Q. 그냥 아무 얘기나 하면 되나요?
Q. 그렇게 아무 얘기나 하면 답이 나오나요?
Q. 제가 좀 급한데 여유도 없어요. 그들은 부유한가요? 50분에 25만원이라서 그런가 봐요.
A. 아무 얘기나 합니다.
A. 인생에 정답은 없어요.
A. 그런 건 왜 묻는 건가요?
실망했겠군요.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큰 꿈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깊게 생각할 겨를 없이 그곳엔 답이 있다고, 약 없이 얘기만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니 왕복 6시간을 극복하겠다고 들이댔다가 약간 길을 잃은 아이처럼 돌아왔다. 그러나 아무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전문가의 입을 통해 명확해졌고 그것은 손바닥 뒤집듯이 바꿀 수 없으며 그냥 그런 내 자체를 알면 되는 거다. 일장일단. 내게 장점도 있을 것이야.
더 오래 상담 다니면 된다는데 제게는 그런 시간과 돈이 없어요. 아니 사실 해결되리라는 것을 아주아주 미미하게나마 체감했다면 더 다닐 의향이었다. 근데 사막 한가운데 놓인, 그늘 한 점 없는 땡볕 아래에 서 있는 것 같아서 과연 이게 맞는 걸까 의문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판단해 여기서 발을 빼기로 한다.
덕분에 서울 구경 잘했고 오히려 길에서 깨닫는 게 더 많았다. 이것도 치료 방법 중 하나인가? 일과 돈만 있다면 다 해결되는 게 인생이라는 것. 성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