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에 있는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에게 상담 다닐 때, 그가 자주 했던 말이 있다. "글쎄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25만 원이라는 돈을 지불하고 50분이라는 시간을 전문가라는 사람에게 샀는데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늘 모르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2시간 내내, 아니 다음 진료를 보기까지 1주일 동안 속이 타고 답답했다. 또 모르겠다는 말을 들으러 가야 한다니!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이 공식을 파괴하는 무적의 논리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그럴 거면 누구나 의사를 하겠다는 욕을 했었다. 그 과정을 세 번 하고 나서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아니 솔직히 왕복 6시간이 아까워서, 아니 더 솔직하게 25만 원이라는 돈이 아까워서 그만뒀다. 그리고는 심리상담이라는 곳은 '헛수고'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가까운 친구에게 이 경험을 나누고 나서 돌이켜보니 그 전문의는 꽤 괜찮은 상담을 해준 사람이었다. 나는 매회 빠르고 성급하게 답을 요구했고 내가 묻는 질문들은 실제로 답이 없는 것들이 맞았다. 그리고 마침내 김승호 작가가 쓴 '돈의 속성'을 읽다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
불교의 반야심경에서는 색, 수, 상, 행, 식 의 오온이 가합인 나는 공이라 가르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의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할 때 오히려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모를 때가 아니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렸을 때가 위험하다.
경제와 자산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나는 모른다는 것에서 정신의학 깨달음을 얻었다는 게 의아하지만, 잘 못 알고 접근하기보다는 정답이 없다는 상태로 내 상태를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틀린 게 아니라 정답이 없으니 나는 하나의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는 하고 싶은 걸 다하고 눈치 보지 말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