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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May 03. 2024

한 우물만 팠더니 그 우물에 빠졌다 (6)

4-1. 내가 우물에 들고 들어간 것은?

마침 때가 그랬다.

하던 일은 잘 풀리지 않았고, 회사에서는 한숨만이 넘쳐났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에, 쉬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보상이 되는 것은 오랜 시간 쌓아온 경력이 주는 남들보다 높은 금액의 월급이었겠으나, 이쯤되면 그것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다들 안다.

그럼에도 일을 그만두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있는 이유는, 그만두고 살만해졌을 때에는 분명히 그 높았던 금액의 월급이 생각날 테니까. 다른 일을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을 금액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싫은 것이다.

매일 계속 되는 비판을 넘어선 비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은 모두 책임자급인 나의 문제가 되고, 억울하다는 말을 뱉어내기에는 나의 직급은 너무나 높고, 그렇다보니 그런 말을 뱉는 것 자체가 스스로 한심해져 모든 문제를 안고 가려다보면, 문득 올려다본 우물이 너무 깊다.


돌이킬 수 없이 많이 내려왔구나 싶어 어디로 가볼까 생각하면,

고작 보이는 건 깨작거리며 파본 우물 옆구리 정도였고, 그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지만 이제 저 위에 다른 세상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고, 올라가 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손을 뻗어보면 나갈 도구가 없다.


아, 답답하네. 하고 있던 찰나, 나에게 전화가왔다.


"회원님, 안녕하세요! 저희 헬스장에서 이번 달에 무료 PT체험을 하고 있는데요!"


뻔하디 뻔한 PT영업.

헬스장에 가면 늘 옆자리에 보이던 누군가의 수업.

솔직히 그거, 안 해도 그만인데 나는 솔깃했다.





병원에 가면 많은 병들을 고치는데 약이 쓰여지지만, 그 외에도 꼭 쓰여지는 것이 '운동'이다.

움직이지 않고, 술만 마시고, 컴퓨터만 하는 현대인에게 내려지는 특효약은 결국 운동 뿐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운동을 강요받기엔 운동을 꽤 열심히 했다.


나의 취미는 술, 그리고 또 하나는 운동이었다.

취미라기에는 사실 그 두 가지는 여러모로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술은 모두가 왜 갉아먹는지 알테니 이하 생략.


운동은 사실 강박에 가까웠다.

막내였던 시절에는 일이 너무 바빴다. 야근은 필수요, 회사에 가는 길에도 일을 해야 했고, 어디서나 전화가 오면 노트북을 켜서 콘센트를 찾았다. 라떼 이야기지만 15년 전이니 당연히 휴대폰으로 메일을 쓰거나 보낼 수 없었으며, 당시엔 노트북도 콘센트를 꽂지 않으면 길에서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싫어하는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지하철 역사에선 콘센트를 꽂을 수 있어서. 응, 잠깐 눈물 닦고 갈게요.


그렇게 매일같이 일에 시달리다보면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었다.

혼자서 어떻게든 이 고통을 이겨낼 '나만을 위한'일이 필요했다. 매일같이 바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날 시간이 없으니, 혼자서 하고싶을 때 할 게 필요했고, 그게 '운동'이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화가 났다.

나를 위해 이것도 못 해?! 라는 엇나간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나를 달래기 위해 몸을 혹사시켰다. 24시간 헬스를 끊어놓고, 새벽 2시에 일이 끝나도 헬스장에 가서 1시간을 뛰고 집으로 갔다. 출근하기 전에는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할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헬스장에 가서 헬스를 하고 출근하기도 했다. 나는 경기도에 살아서 서울에 있는 회사까지 2시간이나 가야했는데, 헬스에 가려면 최소 4시간 전에 집에서 나와야했다.


모든 하루하루가 강박적이었으나, 그래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를 위한 일이었으니까.


그 이후에도 운동은 꾸준히, 열심히, 계속 해왔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나에게 운동은 도피처였다. 누군가가 강요하거나, 해야 한다고 말하면 도망칠 것이 뻔하니 PT같은 건 받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하고 싶은대로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일 하는 것이 힘들고 지칠 때면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나는 아령을 짊어지고 우물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삽질을 더 잘 하기 위해 아령으로 운동을 으쌰으쌰 한 다음에 다시 우물 안으로 깊게, 더 깊게. 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새벽에 하는 운동은 때때로 건강을 위한다기보다 해치는 행위에 가까웠음에도 나는 그걸 해야지 건강해지고, 해야지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 내 방식대로만 하는 운동이 어딘가 묘하게 이상했다.

몸은 더 불편해졌고, 자꾸만 삐그덕 대는 것 같았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운동의 우물에도 빠져버린 것이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는 운동법에 갇혀서 삐그덕대던 몸은, 마치 일과 마찬가지로 15년 쯤 그렇게 고여있다가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니 멋대로, 니가 하고 싶은대로만 파고드니까 이 난리라며 압박을 주던 몸은 어느 날, 내가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줍자 반란을 시작했다.


허리가 나갔다.

3일을 제대로 허리도 펴지 못하고 잠도 편하게 자지 못했다.

다행히 디스크는 아니라고 했는데 너무나 두려웠다.

헬스장 고인물로, 헬스장이 폐업할 때까지 다니며 15년 운동을 했는데 그게 결국 문제가 되었다.



일도 문제, 헬스도 문제.

이래서야 뭐 되겠어? 할 때 바로 그 전화가 걸려왔다.


"회원님, 안녕하세요! 저희 헬스장에서 이번 달에 무료 PT체험을 하고 있는데요!"


그 선생님의 경우, 타이밍이 좋았고.


"어, 저 해볼래요."


나의 경우에도, 타이밍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우물에서 탈출하기 위한, PT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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