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랑하기

사랑은 어려워

by 솜다


욕심이 많아 그 무게에 허덕이는 것 같다. 누가 내게 많은 걸 바랐나. 그런 사람 아무도 없는데. 스스로 어깨에 쌓아 올린 짐들이었는데 과부하가 왔다는 걸 자각한 이십 대 중후반부터는 분수를 알고 차곡차곡 내려놓기 시작했다. 내린다고 내렸는데 여전히 남아있는 것도 한 짐 이긴 하다. 욕심이 많아 샘도 많다. 내 감정에 내가 치이니 업보라 생각하고 덤덤해지려고 했다. 별 감흥 없이 받아들이려고 해도 유난히 안타까운 것도 있다. 먼저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짝사랑 말이다. 영화나 책이나 노래나, 주변을 돌아보면 보이고 들리는 게 짝사랑 썰인데 난 그 흔한 감정을 못 느껴봤다. 영상에서는 간질간질한 감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데, 왜 나는 경험을 못 해본 걸까. 미치도록 억울하다. 나도 짝사랑에 붕 뜨고 싶고 어느 날엔 애타는 맘에 눈물도 흘려보고 싶은데. 대체로 분홍이나, 노랑으로 칠해진다는 장면들에 가끔은 어둠이 찾아오더라도 그걸 느껴보고 싶다. 간질간질해지고 싶단 말이다.


애초에 다솜과 짝사랑이 안 어울리긴 하다. 동물이 좋아 죽겠으면서도 지나가는 강아지가 내게 관심이 없으면 나도 걔네를 쫓던 눈길을 거둬버린다. 인권만큼이나 견권 신장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나인데(어쩌면 강아지들이 더 대우받는 세상을 꿈꾸기도...). 하물며 강아지들에게도 그런데 사람은 어떨까.


최근 읽고 있는 에세이의 작가는 짝사랑쟁이이다. 그녀가 짝사랑에 대해 적어놓은 포인트마다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더니 책이 금세 알록달록 해졌다.

'사랑을 하면 세상이 밝게 빛나고 귓가에 종소리가 울리다던데 그건 너랑 내가 주고받는 사랑일 경우의 이야기고, 짝사랑일 때는 이게 또 굉장히 다르다. 세상은 어둡고 내가 좋아하는 그 애한테만 핀 조명이 아주 짓궂게 다이렉트로 내리쬔다. 그 애를 제외한 주변은 캄캄보다 더 캄캄해서 나는 걔를 북극성처럼 두고 자꾸만 방향을 잃는 기분이다.'*

*안느끼한 산문집-강이슬


현재 열렬히 사랑하는 중인 내가 짝사랑을 갈망하고 있다는 걸 동생에게 털어놓으니, 어디 가서 그런 얘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남이 들으면 인성 쓰레기라고 생각한다고. 물론 지금 짝사랑을 하고 싶다는 게 아니다. 그저, 겪어본 적 없는 감정에 대한 아쉬움과 앞으로 짝사랑을 경험해 볼 그 낮은 가능성을 떠올리면 밀려오는 안타까움에 하는 이야기이다. 이제껏 누군가를 혼자, 그리고 먼저 사랑하지 않아서 비축한 에너지가 꽤 될 터이다. 물론 아쉬워하는데 들어간 에너지도 어느 정도 될 거지만 셈을 해보자면 그래도 아낀 쪽이 더 많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내 에너지가 아까우니까 더 이상 스스로를 어여삐 여기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쌓아놓은 그 에너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겠다. 늘 사랑하던 엄마와 아빠와 다희, 예뻐하는 친구들, 남자친구 이외에도 다른 누군가를 사랑해 보려고 한다. 마침 연말이다. 올해까지만 조금만 더 시니컬하게 살다가 차차 사랑하는 데 에너지를 투자해 보려고 한다. 대상도 방법도 정하지 않고 막연하게 사랑하기로 정한거라 어떤 결괏값이 나올지 모른다. 결과가 처참하더라도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도전적으로 해보는 새해를 맞이해보고 싶다. 새해 목표는 정했다. 먼저 사랑하기!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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