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by 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내가 한 말은 아니고 진화인류학의 권위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가 그렇게 얘기했다. 그 유명한 찰스 다윈도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라고 했다. 동감한다. 고학력자들의 입에서 나온 얘기라서가 아니다. 내가 친구들과 모여서 썸남과 남자친구, 혹은 구썸남과 남편 등 다양한 워딩으로 명명되는 이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결론은 하나다. "다정한 남자가 짱이다"


안구건조증에는 <폭삭 속았수다>가 약이라는 농도 있다. 보기 전엔 에이-했는데, 1화부터 콧물 눈물 다 짜내는 나는 F 인가. 각설하고 입소문 탄지 꽤 된 드라마를 남들보다 뒤늦게 정주행을 시작했다(아직도 보는 중). 엄마와 다희와 퇴근하고 와서 한 편씩 보는 드라마가 힐링이었다. 하나같이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 가득했다. 그중 최고는 양관식 아닐까. 다희는 '저런 남자가 실제로 어딨냐'라고 했다. 그때 드라마 그만 보고 자자는 우리의 아빠님을 보고 있자니 한순간 '그렇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런 순애보가 어디 있어. 하지만 다정한 사람은 많다. 이건 팩트다.

*사실 아빠는 엄마와 붙어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내가 만났던 남자친구들만 봐도 참 다정했다. 출장지에서 맛있는 걸 먹으면 내가 생각난다고 사 왔고, 애처럼 굴면서 토라져도 화를 풀어주려고 했다. 자취방에서 쓰러져 구급차를 불렀을 때는 연차를 내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한때는 그 사람의 회사 복지비 전부 내 차지였던 적도 있다. 자기 복지비로 내게 아이폰 사주고, 에어팟 사주고, 노트북을 사줬던 사람이 있었다. (적고 보니 받기만 하는 연애 같은데, 나야말로 최선을 다해 연애를 하는 스타일이니 오해 말길) 그냥 길 가다가 타르트 가게가 보여서 한판 사 왔다는 사람도 있었지. 자취할 땐 대중교통 한 번 탄 적 없이 본가에 다녔다. 매번 데려다주는 게 힘들진 않았을까. 질문조차 의미 없다. 백퍼 힘들었겠지. 어떻게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 안 힘드냐고 물어볼 때마다 자기는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 괜찮다고 했다.


이젠 모두 전 남자친구와의 이야기고 나도 새로운 남자친구와 알콩달콩 연애를 하고 있으니 미워했던 감정이 사그라들었다. 얼마 전 모인XX 염색체 끼리의 모임에서는 나의 EX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그 새끼는 잘 사냐는 친구의 질문도 나왔다. 친구는 내 편을 들면서 그 새끼라고 했을 텐데 고맙고도 미안하게도 나는 아무 감정이 없었다.

"사실 나 이제 걔한테 아무런 감정 없어. 밉지도 않아."

"왜?"

"시간 지나니까 좋은 기억만 남은 것 같아. 잘해준 거."


진심이다. 잘 기억도 나지 않을뿐더러 구태여 머릿속에서 전 연애 기간 동안 짜쳤던 거, 싸웠던 거, 짜증 났던 거, 구질구질했던 거를 삽질하듯 파내고 싶지 않다. 이미 헤어진 마당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잘 먹고 잘 살라는 응원 정도이다. 헤어지고 못 산다는 소식 들으면 속상할 테니 오히려 그 편이 더 후련하다.


분명 나쁜 일이 있었고 이걸 계기로 헤어진 게 분명하겠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얕게 생각해 보면- 다들 참 다정했다. 누군가는 세상을 회색빛이라고 얘기하던데 그중에서도 흰색에 가까운 회색도 있을 테고 깜장에 가까운 회색도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구를 보는지, 누구와 얘기하는지, 누구의 얘기를 듣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다정했던 사람들 덕분에 어둡지 않은 연애를 했다. 서툴렀던 나의 첫 연애를 생각하면 나를 스쳐간 많은 다정함들로, 나는 참 많이도 컸다.


그리고 애초에 내 세상은 회색빛이 아니다. 알록달록하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닌 것 같긴 한데, 적어도 무채색이 아닌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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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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