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치맘을 아시나요

by 솜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 보인다고 했다. 어폐가 있다. 고슴도치의 새끼는 내가 봐도 예쁘다. 귀여워 죽겠는걸. 어미 고슴도치는 그저 객관적 시각으로 자신의 아이를 봤던 것이다. '객관적 시각'을 논하며 우리 부모님을 빼자니 섭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러했다. 명절 때마다 할머니 댁에 모여 소꿉놀이며 도둑과 경찰을 함께 해댄 사촌 남매가 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봐도 예쁘거나 멋진, 혹은 귀엽거나 깜찍하거나 훈훈한 얼굴들은 아니었다. 사실 얼굴이 뭐가 중요하랴. 그냥 그랬다는 얘기이다. 그런데도 작은 엄마는 이들에게 '너무 잘생겼다' '세상 최고 미남(미녀)다' 등의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했다. 어린 나로서는 딜레마에 봉착한 적도 있다. '저 말은 진심일까? 나는 미의 기준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원래 다 자기 자식은 예뻐 보이는 법이라는 걸 여러 날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부모님은 우리에게 저런 말을 했던 적이 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들은 적이 없기에 기억나지 않는 거겠지. 그 정도로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에 대한 외모 칭찬에 야박했다.


어렸을 때라면 조금은 서운해했을까-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삼십 년이 넘는 해를 그런 부모님과 살아온 터라 그런지, ‘우리 딸 예쁘다’라는 얘기를 어쩌다가 듣게 된 날은 -사실 이날도 예쁘다고 한 게 아니라 ‘너 정도면 예쁘장하지 않냐’ 정도의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입으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했고, 두 눈은 둘 데를 잃어 동공 지진이 일어났었다.


얼마 전엔 봄이 목전이라지만 꽃샘추위에 옷을 겹겹이 걸쳐 입고 회사에 갔다. 출근할 땐 정신이 없어 신경 쓰지 못했는데 퇴근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서 마주한 몰골이 처참했다. 별수 있으랴. 그 모습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잘 다녀왔다는 인사를 엄마한테 건넸더니 엄마는 내 고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했다.


“너 고등학생 때 만나서 같이 집에 왔던 거 기억나? 그날도 엄청 추웠는데.”


그런 적이 있었다. 너무 추웠던 겨울날이라 학교에서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거적때기들을 그러모아 몸에 걸치고 하교하는 날이었다. 당연히 체육복을 입었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최대한 많이 입으려고 노력했기에 체육복 바지 위에는 치마도 입었다. 후드티도 뒤집어쓰고 패딩도 입었다. 수면양말이 다 보이는 걸 창피해하지 않아 하며 각반 마냥 감쌌다. 당시 내 시력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가야겠다. 시력은 마이너스 9 정도 되고 난시도 있던 당시의 나는 뺑글뺑글 돌아가는 뿔테안경도 코 끝에 걸쳤었다. 목도리도 했었기에 나의 들숨과 날숨으로 인해 안경에는 김이 서려 시야도 거의 포기했던 상황이었다.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하교하던 길이었는데 엄마도 비슷한 시간에 볼일을 보고 돌아가는 중이었기에 내게 전화를 걸어 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마트 앞에서 만난 엄마는 그때의 나를 보자마자 빵-터졌다. 그리고 그때의 내 모습은 가끔씩 엄마로부터 회자된다. “너 그때 진짜 귀여웠는데” 하고.


지금은 10년이 훌쩍 지나 당사자의 기억이라도 조금은 바랬지만 분명히 기억하는 건, 난 정말로 귀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능을 앞두고 있는 통통하고 못생긴 날 것 그대로의 페이스인 못생긴 고딩 소녀였을 뿐인데.


그런데도 엄마는 귀엽다고 얘기한다. 우리 엄마는 고슴도치가 아닌 줄 알았는데 말이다. 매사에 의심이 많아 남의 칭찬이든 악담이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편인데 엄마의 이 말엔 한 톨의 거짓도 묻어있지 않은 것만 같다. 그렇다고 믿고 싶기도 하고. 이마저도 의심해버리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온기 없는 일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 때문에, 엄마 덕분에 이렇게 가끔이라도 사랑을 마주하게 된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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