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파업'입니다.

나 성장일기 : 심리학을 통한 자기 양육 ep3.

by 윤 슬
"아, 오늘은 파업이다. 도저히 못하겠다!"



퇴근 후, 샤워를 하는 도중 무심결에 튀어나온 한 마디.

숨 가쁜 요즘이다. 주 일과가 끝나자마자 2번의 회의, 이번 주에 필요한 자료제작, 이후 행정처리, 그리고 몇 번의 전화 통화와 청소까지. 이제 다 끝났나? 아참, 물품 구입, 공지 전달이 남았구나. 이것저것 하다 보니 어느덧 7시 반이 훌쩍 넘었다.

어쨌든 오늘도 살아남았다. 일단 오늘의 서바이벌 게임에서는 생존. 언제 걸린지도 모를 감기에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으며 시동을 건다. 드디어 퇴근.

분명 이런저런 다짐을 하며 퇴근길을 달려왔다. 집 가면 글 한편 쓰고, 운동 갔다 와서 빨래를 하고 독서도 해야지. 사실 의욕이 넘친 날은 아니었지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소위 말하는 '갓생러'로 살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는 순간 나의 다짐도 같이 녹아내렸다. 뜨거운 수증기 때문인지, 많은 계획들 때문인지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드디어 마음의 여유가 바닥이 난 것이다.

사실, 며칠간 한 가지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글 한 편을 어서 완성해야 하는데...' 이 뒤에 생략된 말은 무엇일까. 문맥상 예상이 가시리라 생각한다. 바로 '못했다.'이다.

나는 업무상 1년 중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고, 퇴근 이후에는 에너지가 거의 0에 수렴을 한다. 글을 쓰지 못했다는 초조함은 내 에너지를 더욱 앗아간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아니 ‘못’하는 '파업'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나는 분신술을 쓸 수 있는 사오정이 아니다.


'어서 글 한 편 써봐야 하는데...'

브런치 작가님들이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으시라 믿는다. (없다면 진심으로 존경의 박수를 드리고 싶다.) 퇴근 이후, 육아 이후, 회식 이후, 밀린 집안일 이후, 자녀 및 가족 케어 이후 등 할 일들을 끝내 놓고 글을 꾸준히 쓴다는 것 쉽지 않다.

브런치 작가라는 역할 이외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은 많다.

사수로서의 역할, 팀원으로서의 역할, 부모로서의 역할, 자녀로서의 역할, 배우자로서의 역할, 친구로서의 역할, 애인으로서의 역할 등. 내 몸은 하나인데 왜 나의 역할은 이리나 많은지. 내가 분신술을 쓸 수 있는 사오정이 아닌데 말이다.


누구나 모든 역할을 잘 해내고 싶어 한다. 회사에서는 유능한 인재로서, 가정에서는 다정하고 집안일에도 부지런한 배우자로서, 자녀에게는 마음을 정확히 알아채서 원하는 것을 해주는 완벽한 부모로서. 꾸준히 자기 계발을 하는 갓생러인 나로서.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고, 물리적인 몸은 하나이며, 우리의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모든 역할을 매일 같이 완벽하게 해내야만 한다는 채찍질은 나를 번아웃의 수령에 빠지게 한다. 또한 나의 이상만큼 해내지 못하였을 땐 좌절감을 겪게 만들고, '왜 이것밖에 못할까'라는 자기 질책을 하게 한다. 이는 결국 나의 자존감까지 쪼그라들게 만든다.

때로는 나에게도 자비가 필요하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를 나에게도 말해줘야 한다.





'자기 자비'


'자기자비(Self-Compassion)'란 미국의 심리학자인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 교수가 제시한 개념으로, 나에 대한 다정하고 건강한 사랑을 뜻한다.

크리스틴 네프 교수에 따르면 자기 자비는 다음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1. 자기 친절 (Self-Kindness) : 고통스럽거나 실수했을 때 스스로를 가혹하게 비판하고 채찍질하는 대신, 따뜻하게 위로하고 이해해 주는 것이다.

2. 보편적 인간성 (Common Humanity) : '나만 이렇게 부족하고 힘든 게 아니야. 누구나 실수하고 아플 수 있어'라며, 나의 실패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3. 마음챙김 (Mindfulness) : 부정적인 감정에 깊이 빠져 허우적대거나 회피하지 않고,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즉, '자기자비'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고통받고 실패했을 때 그를 위로하고 아껴주듯,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내 숨만큼만 하자."


회의가 끝난 어느 날, 테이블 위의 커피잔을 치우시던 부장님이 흘러가듯이 한 마디를 던졌다.

"내 숨만큼만 하자."

흘러가는 이 한마디가 왜 이렇게 내 마음에 콕 남아있는지.

기대수명 80세 시대. 물론 생사는 하늘의 뜻이라지만 통계학적으로 보면 80세를 돌파했다. 우리네 인생이 꽤나 길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긴 인생을 '롱런(Long-run)' 해야 한다. 각자 직장에서의 한몫으로서도, 부모로서도, 배우자로서도, 자식으로서도, 친구로서도, 대인관계들의 일원으로서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삶의 유일한 소유자로서도 살아갈 시간도 길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이 긴 여정을 끝까지 완주하려면 나에게도 자비로움이 필요하다.

실수를 했을 땐 "괜찮다. 그럴 수 있다."는 격려의 한 마디를 해 줄 수 있어야 하고, 이상만큼 못했을 땐 "그래도 오늘 잘 살았다."는 응원의 쓰다듬음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또, 내가 좌절과 불안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땐, "오늘 힘들었지? 고생했어."라는 위로로 나를 껴안아 주어야 한다.


실수해도 괜찮고, 좌절해도 괜찮다. 내 욕심만큼 못해도 괜찮다. 나에겐 내일이 있고, 앞으로가 있다.

"내 숨만큼만 하자. 우리 딱 내 숨만큼만 하자."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다정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은 실패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내일의 나를 있게 한다. 우리의 인생은 길고, 긴 인생의 여정에서 수많은 포기의 순간들과 깊고 깊은 좌절들을 겪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다시 나를 다독여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걸어가야 한다.

'자기자비'야 말로 진정으로 나를 다독일 수 있는, 그리고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일어나 다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게 만드는 진정한 '자기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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