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다이닝과 분식집의 관계와도 같은 이야기
크몽은 프리랜서와 클라이언트를 연결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다. 디자인, 번역, 프로그래밍, 마케팅, 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의 프리랜서들이 자신의 서비스를 판매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그러나, 크몽이 디자인 업계를 망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이 가격에 누가 로고 작업을 해?
공장처럼 찍어내는 디자인들이 판치고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이런 불만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크몽에서는 로고 하나가 몇만 원에 거래되고, 브랜드 패키지 디자인이 불과 10만원에 올라온다. 가격이 낮아지면 소비자는 좋아하지만, 디자이너들은 한숨을 쉰다. 업계의 ‘기본 단가’라는 것이 점점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크몽만이 문제일까?
디자인은 원래 가격을 매기기 어려운 영역이다. 같은 로고 디자인이라도 누군가는 5만 원을 부르고, 또 누군가는 500만 원을 부른다. 중요한 건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그 디자인이 얼마나 깊은 고민과 전략을 담고 있느냐다. 크몽의 등장은 디자인을 보다 대중화했다. 디자인을 의뢰하는 일이 더 이상 대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개인이나 소상공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과정에서 디자인이 ‘전문기술’이 아닌 ‘상품’으로만 취급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 똑같은 로고 아닌가요?’라는 질문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낮은 가격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결국 ‘가격이 아닌 가치’를 팔아야 한다. 크몽이 분식집이라면, 전문 디자이너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되어야 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스테이크를 찾을 수 없듯이, 제대로 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스토리를 제공하는 디자이너는 단가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결국 디자인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디자이너 자신이다. 크몽이 업계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크몽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디자인의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 단순한 그림 한 장이 아니라, 브랜드의 얼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디자인의 가치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철학에서 비롯된다.
분식집은 빠르고 간편하다. 메뉴는 정해져 있고, 원하는 걸 고르면 금방 만들어진다. 김밥 한 줄, 떡볶이 한 접시, 혹은 튀김 몇 개. 가격도 합리적이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크몽이 그렇다. 원하는 디자인을 고르고, 정해진 가격을 지불하면 빠르게 결과물을 받을 수 있다. 로고 디자인, 명함 제작, 배너 이미지까지, 하나의 메뉴처럼 깔끔하게 제공된다.
반면, 디자인 스튜디오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가깝다. 이곳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경험이다. 셰프는 손님의 취향을 반영해 메뉴를 구성하고, 음식 하나하나에 철학을 담는다. 가격은 분식집보다 훨씬 높지만, 그만큼 깊이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디자인 스튜디오도 마찬가지다. 클라이언트의 브랜드 정체성을 분석하고, 맞춤형 디자인 전략을 제안한다. 한 끼를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물론,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 퇴근길에 가볍게 출출함을 달래고 싶을 때는 분식집이 제격이고, 특별한 날의 만찬을 원할 때는 파인다이닝이 필요하듯이, 디자인도 목적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빠르고 경제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면 크몽이 적합하고, 브랜드의 본질을 깊이 고민하고 싶다면 디자인 스튜디오를 찾는 게 맞다.
결국, 중요한 건 ‘어떤 디자인이 필요한가’이다. 가벼운 한 끼가 필요할지, 정성스러운 코스 요리가 필요할지, 그 선택은 언제나 우리 몫이다.
분식집과 파인다이닝, 정말 이만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비유가 시사하는 더 깊은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분식집의 확산은 한국 음식문화의 전체적인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생각해보자.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분식집이 우후죽순 늘어날수록, '미식'에 대한 수요가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크몽과 같은 플랫폼이 디자인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이와 유사하다. '로고 디자인 5만원', '명함 디자인 3만원'과 같은 정찰제 방식은 분명 접근성을 높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디자인이라는 창의적 작업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현실이 있다. 디자이너의 경험, 교육, 노하우는 어느새 '상품'으로 규격화되고, 그 깊이와 가치는 간과된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장기적인 디자인 생태계의 건강이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사라진 도시를 상상해보라. 남아있는 것은 빠르고 저렴한 체인점들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요리사들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그들의 창의성과 기술은 어디서 발휘될 수 있을까? 크몽식 플랫폼이 디자인 시장의 주류가 된다면, 디자이너들의 성장 경로도 이와 비슷해질 수 있다.
디자인은 단순한 '그림 그리기'가 아니다. 문제 해결의 과정이며, 클라이언트의 무형의 가치를 유형화하는 작업이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셰프가 식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조리법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요리를 창조하듯, 좋은 디자이너는 브랜드의 본질을 꿰뚫고 그에 맞는 시각언어를 개발한다.
물론 모든 상황에 파인다이닝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간편하고 빠른 분식이 필요하듯, 간단한 디자인 작업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문제는 '분식집'만 남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디자이너 개인의 수입 문제를 넘어, 디자인 전체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소비자로서, 그리고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클라이언트로서, 우리는 단순히 '싼 것'을 찾기보다 '가치 있는 것'을 찾는 안목이 필요하다. 내 브랜드, 내 비즈니스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때로는 간단한 분식 한 끼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진정한 미각의 즐거움과 영양을 위해서는 가끔 파인다이닝의 경험도 필요하지 않은가.
디자이너로서는 자신의 가치를 명확히 하고, 그것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당신의 디자인이 크몽의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지, 어떤 깊이와 전문성을 제공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선택하는 음식이 우리의 건강과 미각을 형성하듯, 우리가 선택하는 디자인 환경은 우리의 시각문화와 디자인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분식집과 파인다이닝이 공존하는 건강한 음식 생태계처럼, 크몽과 전문 디자인 스튜디오가 각자의 영역에서 공존하며 디자인 생태계를 풍요롭게 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생태계 속에서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디자이너들은 알고 있다. 크몽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시장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디자이너들이 크몽을 떠나지 못한다.
싫어도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크몽이 제일 의뢰가 많이와서..
크몽은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영세한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은 혼자서 고객을 찾고, 계약을 따내고, 작업을 마친 후 대금을 받는 과정이 쉽지 않다. 클라이언트와의 줄다리기, 끝없는 수정 요청, 그리고 지연되는 결제까지.
이런 과정에서 크몽은 마치 ‘안전한 항구’처럼 보인다. 고객이 많고,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며, 최소한 일은 계속 들어온다. 문제는, 그 시스템이 디자이너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가격을 낮춰서라도 일감을 따내야 한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단가는 점점 떨어진다. 고객들은 점점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크몽의 수수료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이 가격에 할 바엔 차라리 하지 말자’는 회의감이 든다. 하지만 정작 크몽을 떠나려 해도 갈 곳이 없다.
그렇다면, 이 타협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크몽은 디자인을 대중화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디자인을 의뢰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디자이너의 노동 가치를 하락시키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크몽을 원망하면서도 크몽에서 일을 이어간다. 탈출하고 싶지만, 현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건, 크몽이 점점 커지는 이유가 바로 이 타협 때문이라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이 더 나은 대안을 찾지 못하고 계속 크몽으로 유입될수록, 크몽은 더 막강한 플랫폼이 된다.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개인 디자이너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결국,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크몽을 택하고 타협할 것인가, 크몽을 떠나 자신의 가치를 지킬 것인가. 어느 쪽이 정답인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이 선택의 결과가, 앞으로 디자인 시장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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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크몽을 비방하기 위해 작성한 글이 아닙니다.
제가 쓰는 모든 글은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제가 쓰는 글에 대한 반대 의견은 당신의 말이 100% 맞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