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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잘하시네요."

브랜드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

by 김용화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일을 잘한다’는 것이 단순히 손재주나 프로그램 스킬에서 오는 게 아님을 자주 느낀다. 오히려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을 읽는 태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다. 나는 내가 느낀 "일 잘하는 디자이너들의 특징"을 묘사해보았다.


#기획의도를 읽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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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이너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 마치 탐정처럼 질문을 던진다.

“이 디자인은 왜 필요한 거죠?”

“결국 누구에게 닿기를 원하시나요?”

그 질문에 답하다 보면 기획자의 의도, 클라이언트의 목표가 자연스레 드러난다.

잘하는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목적을 수행하는 수단이고, 그 목적을 정확히 읽어내는 순간부터 이미 절반은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방향을 모른 채 화려하게만 꾸민 지도는 결국 아무데도 데려다주지 못하듯, 기획의도를 놓친 디자인은 길을 잃는다.


#역제안을 할 줄 아는 디자인 논리·설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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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의도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다른 길을 제시한다.

“말씀하신 A안은 이렇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시선에서 본다면 B안이 좀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이 말 속에는 존중과 전문성이 동시에 담겨 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디자이너의 직관과 경험을 곁들여 제안하는 것. 결국 선택은 클라이언트가 하겠지만, 그 순간 디자이너는 단순히 ‘손을 움직이는 사람’에서 ‘함께 길을 찾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한다.

이런 디자이너와 일하면 묘하게 안심이 된다. 내가 놓친 부분을 대신 보고 있다는 확신 때문일까.


#힘을 빼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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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힘을 줄 줄 아는 만큼, 힘을 뺄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50대 이상을 타깃으로 한 제품에 지나치게 힙하고 트렌디한 그래픽을 들이밀면, 그것은 디자이너의 자기만족과 예술일 뿐 시장에서는 공감을 얻기 어렵다. 일 잘하는 디자이너는 연령, 문화적 맥락, 매체의 성격을 고려해 절제한다.

“이건 내 취향이지만, 소비자는 이것보다 조금 더 톤을 낮춰야 더 편안해할 거야.”

유저 입장에서 생각하는 이런 작은 배려와 조율 속에서 디자인은 비로소 제 기능을 다한다. 힘을 빼는 순간, 디자인은 더 이상 ‘디자이너의 자기표현’이 아니라 ‘상대방의 언어’가 된다.


위의 말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일부는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직업정신이라는 마인드로 너무 작은것에 몰두하느라 큰 것을 놓치거나 중요한 것을 지나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업의 경중을 정확하게 파악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직업인으로써 몇 가지는 내려놓아야 할 것들도 있을 것이다.



#디자이너가 내려놓아야 할 것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디자이너일수록 무언가를 내려놓을 줄 안다. 붙잡으려는 욕심이 많을수록 디자인은 오히려 무거워지고, 소비자는 멀어진다. 이는 내가 말했던 뷔페에서 한 접시에 모든것을 담고싶어하는 마음과도 같을 것이다. 디자인 실무를 할 때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를 리딩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덜어내기가 필요할 것이다.


1. 모든 걸 직접 하려는 욕심

브랜드를 만들 때 모든 디자인을 혼자 다 하려는 순간, 시야가 좁아진다. 협업을 통해 더 넓은 가능성을 만나야 하는데, 손안의 것만 움켜쥐다 결국 지쳐버린다. 때로는 팀원, 타 부서의 의견을 경청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비전공자의 인사이트는 디자이너와 함께 만나 더더욱 커다란 아이디어로 부풀어 오를 수 있음을 명심하자.


2. 완벽주의

픽셀 하나, 간격 0.1mm에 매달리다 보면 숲을 놓치기 쉽다. 완벽을 추구하다가 마감을 놓치고, 핵심 메시지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지금 필요한 완성도’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더 현명하다. 하지만 디자인 요소가 너무 많아서 디테일을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되는데 챙기는 것과, 미니멀리즘 디자인에서 디테일을 챙기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니 절대 오해하지 말자.


3. 디테일 집착

디테일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디테일이 중요한 건 아니다. 소비자가 결코 알아채지 못할 미세한 부분에 집착하다 보면, 진짜로 눈에 띄어야 할 큰 요소들이 희미해진다. 디테일은 전체를 위해 존재할 때만 빛난다. 2번의 얘기와도 일맥상통 하는 얘기지만, 캔버스 위에 점 하나의 디테일을 관리하는것과 음식점 영양성분표 안에 선과 점들을 같은 디테일 선상에 두고 일하면 큰 일난다.


4. 개인 취향

“난 이 느낌이 좋아서”라는 말은 종종 디자인을 망친다. 디자이너의 취향은 디자인을 시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지만, 최종 판단을 이끄는 나침반이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취향을 고집하는 순간, 소비자는 소외된다. 이 세상은 예술이 아니다. 지극히 상업적인 세상에서 본인만의 예술을 고집하는 것은 예술가나 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노동력을 댓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반 고흐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조나단 아이브는 수십 억원의 연봉을 받으면서 '일'했다. 내 스스로가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디자이너로 일 할 각오라면, 반 고흐와 같은 삶을 살기를 각오하고 행동해야 한다.




잘하는 디자이너는 눈에 보이는 것만 다루지 않는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기획의 의도를 읽어내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길을 제안하며, 자신만의 취향과 완벽주의를 내려놓을 줄 안다. 그 과정은 마치 그림에서 여백을 남기는 일과도 닮아 있다. 여백을 두는 순간, 비로소 본질이 드러난다. 디자이너가 내려놓을 때, 오히려 디자인은 더 강렬해지고 브랜드는 더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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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쓰는 모든 글은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제가 쓰는 글에 대한 반대 의견은 당신의 말이 100% 맞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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