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일을 잘한다’는 것이 단순히 손재주나 프로그램 스킬에서 오는 게 아님을 자주 느낀다. 오히려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을 읽는 태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다. 나는 내가 느낀 "일 잘하는 디자이너들의 특징"을 묘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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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이너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 마치 탐정처럼 질문을 던진다.
“이 디자인은 왜 필요한 거죠?”
“결국 누구에게 닿기를 원하시나요?”
그 질문에 답하다 보면 기획자의 의도, 클라이언트의 목표가 자연스레 드러난다.
잘하는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목적을 수행하는 수단이고, 그 목적을 정확히 읽어내는 순간부터 이미 절반은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방향을 모른 채 화려하게만 꾸민 지도는 결국 아무데도 데려다주지 못하듯, 기획의도를 놓친 디자인은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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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의도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다른 길을 제시한다.
“말씀하신 A안은 이렇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시선에서 본다면 B안이 좀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이 말 속에는 존중과 전문성이 동시에 담겨 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디자이너의 직관과 경험을 곁들여 제안하는 것. 결국 선택은 클라이언트가 하겠지만, 그 순간 디자이너는 단순히 ‘손을 움직이는 사람’에서 ‘함께 길을 찾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한다.
이런 디자이너와 일하면 묘하게 안심이 된다. 내가 놓친 부분을 대신 보고 있다는 확신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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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힘을 줄 줄 아는 만큼, 힘을 뺄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50대 이상을 타깃으로 한 제품에 지나치게 힙하고 트렌디한 그래픽을 들이밀면, 그것은 디자이너의 자기만족과 예술일 뿐 시장에서는 공감을 얻기 어렵다. 일 잘하는 디자이너는 연령, 문화적 맥락, 매체의 성격을 고려해 절제한다.
“이건 내 취향이지만, 소비자는 이것보다 조금 더 톤을 낮춰야 더 편안해할 거야.”
유저 입장에서 생각하는 이런 작은 배려와 조율 속에서 디자인은 비로소 제 기능을 다한다. 힘을 빼는 순간, 디자인은 더 이상 ‘디자이너의 자기표현’이 아니라 ‘상대방의 언어’가 된다.
위의 말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일부는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직업정신이라는 마인드로 너무 작은것에 몰두하느라 큰 것을 놓치거나 중요한 것을 지나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업의 경중을 정확하게 파악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직업인으로써 몇 가지는 내려놓아야 할 것들도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디자이너일수록 무언가를 내려놓을 줄 안다. 붙잡으려는 욕심이 많을수록 디자인은 오히려 무거워지고, 소비자는 멀어진다. 이는 내가 말했던 뷔페에서 한 접시에 모든것을 담고싶어하는 마음과도 같을 것이다. 디자인 실무를 할 때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를 리딩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덜어내기가 필요할 것이다.
브랜드를 만들 때 모든 디자인을 혼자 다 하려는 순간, 시야가 좁아진다. 협업을 통해 더 넓은 가능성을 만나야 하는데, 손안의 것만 움켜쥐다 결국 지쳐버린다. 때로는 팀원, 타 부서의 의견을 경청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비전공자의 인사이트는 디자이너와 함께 만나 더더욱 커다란 아이디어로 부풀어 오를 수 있음을 명심하자.
픽셀 하나, 간격 0.1mm에 매달리다 보면 숲을 놓치기 쉽다. 완벽을 추구하다가 마감을 놓치고, 핵심 메시지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지금 필요한 완성도’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더 현명하다. 하지만 디자인 요소가 너무 많아서 디테일을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되는데 챙기는 것과, 미니멀리즘 디자인에서 디테일을 챙기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니 절대 오해하지 말자.
디테일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디테일이 중요한 건 아니다. 소비자가 결코 알아채지 못할 미세한 부분에 집착하다 보면, 진짜로 눈에 띄어야 할 큰 요소들이 희미해진다. 디테일은 전체를 위해 존재할 때만 빛난다. 2번의 얘기와도 일맥상통 하는 얘기지만, 캔버스 위에 점 하나의 디테일을 관리하는것과 음식점 영양성분표 안에 선과 점들을 같은 디테일 선상에 두고 일하면 큰 일난다.
“난 이 느낌이 좋아서”라는 말은 종종 디자인을 망친다. 디자이너의 취향은 디자인을 시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지만, 최종 판단을 이끄는 나침반이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취향을 고집하는 순간, 소비자는 소외된다. 이 세상은 예술이 아니다. 지극히 상업적인 세상에서 본인만의 예술을 고집하는 것은 예술가나 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노동력을 댓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반 고흐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조나단 아이브는 수십 억원의 연봉을 받으면서 '일'했다. 내 스스로가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디자이너로 일 할 각오라면, 반 고흐와 같은 삶을 살기를 각오하고 행동해야 한다.
잘하는 디자이너는 눈에 보이는 것만 다루지 않는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기획의 의도를 읽어내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길을 제안하며, 자신만의 취향과 완벽주의를 내려놓을 줄 안다. 그 과정은 마치 그림에서 여백을 남기는 일과도 닮아 있다. 여백을 두는 순간, 비로소 본질이 드러난다. 디자이너가 내려놓을 때, 오히려 디자인은 더 강렬해지고 브랜드는 더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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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쓰는 모든 글은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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