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와 프로를 나누는 기준
디자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한 번쯤은 누군가의 포스터를 따라 만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SNS에 올라온 감각적인 레이아웃을 흉내 내고, 무료 폰트를 가져다 쓰면 그럴듯한 결과물은 금세 나온다. 처음 접하는 사람조차 ‘이 정도면 괜찮네’라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한 번은 누구나 잘할 수 있다. 그러나 매번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 지점에서 나는 늘 스포츠를 떠올린다. 축구든 농구든, 경기에 나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동네 공원에서도 공은 굴러다니고, 골대는 서 있다. 슛을 찰 수 있는 발, 던질 수 있는 팔이 있다면 누구나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누가 프로 선수가 되는지는 다르다. 공을 잡을 때마다 슛을 던질 수는 있지만, 그 슛이 득점으로 연결되는 확률은 사람마다 극명히 갈린다. 결국 선수의 ‘평균 득점률’이 커리어를 결정한다. 디자인도 똑같다. 누구나 한 번쯤은 멋진 포스터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꾸준히, 일정 수준 이상을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잘하는 디자이너와 그렇지 않은 디자이너를 가르는 기준은 바로 이 지속성과 재현 가능성이다.
나는 종종 신입 디자이너들이 만든 작품에서 놀라움을 발견한다. 새로움, 파격, 때로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감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감각은 한순간 불꽃처럼 타오르고 사라지기도 한다. 반대로 오랜 경력을 가진 디자이너는 놀라운 파격은 적을 수 있지만, 언제나 기본 이상의 안정감을 보장한다. 마치 농구에서 아마추어가 가끔은 3점슛을 성공시킬 수 있지만, 프로는 경기 내내 70% 이상의 자유투 성공률을 유지하는 것과 같다. 이 차이가 바로 ‘실력’이자 ‘경력’의 무게다. 실력이란 단순히 빛나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 결과물을 반복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다. 경력은 그 반복을 증명해온 시간의 총합이다. 결국 프로 디자이너는 화려한 한 방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든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를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디자이너는 운 좋게 처음 맡은 프로젝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다음 프로젝트에서 같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것은 ‘우연한 성공’일 뿐이다. 시장은 그런 우연에 오래 기대지 않는다. 농구에서 누구나 던질 수 있는 슛이 의미를 가지려면, 득점률이 따라야 한다. 한 시즌 전체, 나아가 몇 년의 커리어 동안 높은 평균을 유지하는 선수가 ‘실력자’로 인정받는다.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다. 프로젝트마다 결과가 요동치는 디자이너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반면 아주 화려하지 않아도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와 시장으로부터 ‘믿을 만하다’는 평판을 얻는다. 그것이 바로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기준이다.
프로 운동선수는 경기에 앞서 늘 비슷한 루틴을 반복한다. 워밍업, 호흡, 습관적인 몸 동작까지, 루틴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실수를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이는 장치다. 디자이너 역시 마찬가지다. 경험 많은 디자이너는 무의식적으로 프로젝트의 방향을 점검하고, 타깃을 설정하며,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시장의 맥락을 동시에 고려한다. 이 과정이 마치 선수의 루틴처럼 몸에 배어 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결과를 만든다. 경력이 쌓일수록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이유는 바로 이 ‘루틴의 내재화’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아름다움’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진짜 프로 디자이너에게 아름다움은 결과이지 목표가 아니다. 목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아름다움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산물이다. 아마추어 디자이너는 아름다움 그 자체에 집착한다. 색을 더 화려하게, 레이아웃을 더 복잡하게, 장식을 더 얹으려 한다. 그러나 프로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는가’를 먼저 본다. 단순한 배치와 색의 절제가 때로는 가장 강력한 결과를 낳는다. 이는 득점률과 같다. 한 번의 화려한 3점슛보다, 매번 안정적으로 성공시키는 자유투가 팀을 이긴다. 프로 디자이너가 쌓아야 하는 것도 결국은 꾸준한 성공의 기록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경력은 단순히 오래 일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도 있고,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는 사람도 있다. 경력이란 결국 얼마나 많은 상황을 경험했고, 그 속에서 배움을 축적했는가를 뜻한다. 클라이언트의 까다로운 요구, 예상치 못한 시장 반응, 협업 과정의 충돌 같은 다양한 변수를 겪을수록, 디자이너는 더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다. 이 경험은 숫자가 아니라 질이다. 그리고 그 질은 디자인 결과물 속에서 은연중에 드러난다.
그렇다면 아마추어 디자이너가 프로로 건너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화려한 재능이나 감각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성공을 만들어내는 훈련이다. 마치 선수들이 매일 수천 번의 슛을 연습하며 득점률을 끌어올리듯, 디자이너도 매 프로젝트마다 ‘어떻게 하면 같은 수준을 반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재능은 빛날 수 있다. 하지만 경력은 쌓여야 한다. 그리고 그 경력은 ‘반복된 성공’이라는 돌덩이처럼 단단한 신뢰를 만든다. 결국 시장이 찾는 것은 번쩍이는 불꽃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불빛이다.
잘하는 디자이너란 한 번의 성취가 아니라, 매번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단순히 감각이 아니라 훈련된 실력이며, 시간이 쌓아올린 경력의 무게다. 축구와 농구에서 결국 프로를 가르는 것이 득점률이듯, 디자인에서도 프로를 가르는 것은 ‘반복 가능한 성과’다. 빛나는 한 방보다, 매번 안정적으로 결과를 내는 꾸준함. 그것이 디자이너를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이끄는 진짜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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