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을 날고 싶었어

by 공진구

대만을 다녀오고 한동안 여행의 여운 때문에 많이 힘겨웠다. 아니, 여행의 여운이라기보다는 곧 2학기가 시작된다는 걱정 때문이 더 맞겠다. 1학기 때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나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먼저 수업의 진도가 너무 빨라 따라가기가 벅찼다. 기초적인 것만 설명하고 순식간에 다음으로 넘어가버리니까 ‘남들은 다 이해하는데 지금 나만 못하고 이게 뭐지?’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옭아매어 어느 순간 손을 놓아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팀플 과제를 하면서 한 팀원과 충돌이 잦았다. 나는 시나리오 담당이었는데 자신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내주면 모를까 단지 시나리오가 마음에 안 든다, 갈아엎는 건 어떠냐는 이유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니 진도는 나가지 않고 마음만 급급해져 갔다. 그만큼 나는 학점에 간절했기에 교수님에게 찾아가 피드백을 요청드렸고, 결국 교수님의 피드백이 반영된 것과 내가 원하는 방향성 두 개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교수님은 후자에 손을 들어주셨다.


그리고 디자인 수업 기말고사의 주제는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평범한 스토리를 1분 이내 영상으로 구상하는 거였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이 솔직히 있었다. 앞이 안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해야 하니까 내가 제일 잘 표현할 수 있으며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며칠 내내 고민하다가 떠오른 것이 바로 나의 방이였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면 어떨까가 이 계획의 시초였다. 바쁜 하루를 끝마치고 휴식할 수 있는 나의 방에서 특별하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일기를 쓰거나 LP를 틀어놓거나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간단한 스토리이지만 가장 나를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천천히 Zoom in 하면서 여러 영상의 투명도를 낮추는 것으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느낌을 연출했다. 성적이 발표되는 날 A+를 받은 것을 보고 입을 틀어막고 소리 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24년 3월,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나 혼자 배낭을 메고서 하늘을 날고 싶었다. 잊지 못할 여행을 하고 싶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을 보내고 있던 중 문득 ‘아, 지금 이 시간에 일을 했다면 여행을 더 많이 갈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게으른 삷을 살 바에는 몸이 버티지 못할 때까지 일을 하는 게 낫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학기가 되자마자 공강인 날에 쉬지도 않고 편의점 알바를 뛰었다. 수업이 일찍 끝나면 학교 근처에서, 주말에 늦은 밤까지 근무했다. 자리가 구멍이 날 때면 사장님은 항상 나를 찾으셨는데 부르실 때마다 가능하다고 뛰쳐나간 경우가 비일비재였다. 그정도로 나는 당장 떠나고 싶었다.


‘이 생활도 조금만 버티면 끝이야’ 그 작은 5평 남짓한 공간에서 물류를 정리할 때마다 든 생각이였다. 새벽 일찍 출근해 자물쇠를 따서 문을 열고 카운터 위에 놓인 담배 재고를 센다. 그리고 눈앞에 쌓인 물류 재고를 정리한다. 위태로운 사다리에 올라타 창고에서 과자를 분류한다.


캔 음료가 포장되어있는 비닐은 손에 힘을 꽉 주어야 잘 뜯어지는데 그러다 뾰족한 부분에 긁혀 상처가 생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냉장고 뒤로 들어가 음료수를 보충 진열하고 있을 때 손님이 오시면 왔다 갔다 움직였다. 허리를 굽으며 수많은 음료를 다 진열하고 난 뒤 매장 청소를 하면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있다. 편의점에 있는 몇 천 원이 아까워서 단출하게 폐기로 한끼를 때우는 것이 내 일상이었다.


남은 시간에는 스카이스캐너에 들어가 여러 나라의 항공권의 가격을 찾아보았다. 언젠가 나도 이곳에 갈 거라며 막연한 희망을 가진 채 말이다. 탭에서 호주를 누르면 나는 단숨에 8310km 떨어진 호주로 이동한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음악에 심취하며 춤을 추거나 퍼스 섬에서 귀여운 쿼카를 보며 웃음을 짓는 나를 상상한다. 그다음에는 뉴질랜드로 이동한다. 남섬을 여행하며 광활한 자연을 보고 눈물을 흘릴 내 모습을 상상한다.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항상 생각의 늪에 빠졌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곳에선 부정적인 생각보단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다. 오늘 하루도 헛되지 않게 열심히 살았다는 마음과 한 발자국 꿈을 향해 나아갔다는 다행, 언젠가 미지의 땅을 디디고 말 것이라는 의지. 또 너는 여행지에서 하루를 머물 수 있는 돈을 오늘 번 거야,라며 스스로를 칭찬해 줬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만, 꼭. 또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