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나는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져.

by 공진구

우연히 어느 여행 유튜버의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편을 봤는데 노르트케테 산 정상에서 이런 말을 했다.


“눈물이 나네 너무 멋있어서. 온통 하얀 세상인데 “

”여러분 실제로 와보세요. 진짜 눈물 나. 너무 예뻐가지고 “


그 말을 딱 듣는데, 순간 울컥했다. 얼마나 예쁘길래. 얼마나 놀랍길래 그럴까. 시간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그녀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 거다. 나도 그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타이밍이 절묘하게 36만 원짜리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편도 티켓을 발견했다. 떠날 날짜는 종강하고 이틀 후인 12월 24일. 이때 시중에 남아있는 돈은 단돈 50만 원이였다.


나는 계속 그랬던 것 같다. 대학교 합격하면 떠나야지. 군대 전역하면 떠나야지. 지금 당장 눈앞의 행복을 이제는 미루고 싶지 않았다. 출국까지 3개월. 남은 돈은 10만 원 언저리. 먼 타지에서 30일 동안 생활할 경비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앞날이 막막했지만 왠지 모르게 뻥 뚫린 푸른 하늘처럼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날부터 나는 악착같이 돈을 아끼기 시작했다. 책을 살 돈도 부담이 돼서 학교 도서관을 이용했다. 한 달에 3권 희망 도서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었는데, 읽고 싶은 책이 많아 주변 동기들에게 부탁해 여행 에세이 신간 책을 읽었다. 한 달에 6만 원이 나가는 통신비가 아까워 가장 저렴한 알뜰폰 요금제로 변경했고, 식비는 쿠팡에서 가장 싼 냉동 볶음밥으로 조촐하게 도시락을 쌌다.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대학교 수업 때는 뒷자리에서 잠을 자거나 여행 준비를 했다. 최소 경비를 계산하고, 기차표를 예매하고, 저렴한 숙소를 찾아 예매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국제 학생증을 발급했고, 도움이 될 여행 정보를 끊임없이 수집했다. 이로 인해 동기들과 자연스레 멀어졌고, 나중에 들은 사실로는 동기 중 한 명이 ”넌 2학기 때부터 왠지 떠날 사람 같았어 “라고 말해줬다.


D-10. 그동안 10평 남짓한 편의점에 근무하면서 단 하루도 여행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으니까. 전공 노트와 필기도구로 꽉 채워진 대학생 가방보다는 무겁더라도 생필품으로 가득 찬 배낭 가방을 메고 싶었으니까. 그래야 어디론가 떠나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편의점에 오전 6시 30분에 출근할 때마다 공기는 더럽게 좋다며, 지금 가는 이 길이 공항으로 향하는 길이였으면 좋겠다고 수십 번도 넘게 생각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단 1%라도 기적이 생기길 바랐다.


고요한 새벽. 출국 당일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새벽 일찍부터 트렁크에 캐리어를 싣고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행복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기분이 무덤덤했다. 창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나 혼자서 여행 잘할 수 있을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나 너무 무모했나?” 그런 걱정들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이 시간은 내가 그토록 바라왔던 꿈같은 시간이라고, 그러니 후회하지말자고 타일렀다.


”너 혼자서 그런 위험한 곳에 어떻게 가려고 그래?”

“돈 벌어서 왜 노는 데 쓰냐”

”대학생이 공부해야지 왜 여행을 가? “


공항에서 가족들과 헤어지고 비행기가 이륙할 때 살짝 울컥했다. 그간 왜 그리 남들 눈치만 보면서 살았을까. 남의 시선에 신경 쓰다 보면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오후 3시에 도착한다면 나는 2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네가 오는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가족들과 친구들을 보지 못한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내 행복을 계속 미루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도대체 언제?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 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니, 나는 지금 행복하고 싶어”


있잖아, 나는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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