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함 속에서 시작된 대화
멜버른에 오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바로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달리는 것. 파란 하늘 아래 해안 도로와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12사도의 장관은 사진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멜버른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지만 대중교통이 없어 투어를 이용해 다녀오기로 했다.
투어 출발 시간보다 여유 있게 나와 트램을 타고 가고 있었는데, 어느 정류장에서 역무원이 갑자기 큰소리로 영어 안내를 하자 트램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상황을 알 수 없던 나는 일단 사람들을 따라 내렸지만, 정류장에서 트램을 기다리던 사람들까지 하나둘 자리룰 떠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혹시 제시간에 못 도착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고, 다른 방법도 마땅치 않아 결국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트램 충돌 사고라도 난 건가?” 하고 혼자 이런이런 이유를 떠올려봤지만, 주변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계속 달리다 보니 그제야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주립도서관 앞에서 대규모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열리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많은 경찰이 배치되어 있었다. 아마 그 영향으로 잠시 트램 운행이 중단된 듯했다.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해 차량에 탑승했다. 투어 인원은 총 다섯 명이었지만 분위기는 다들 조금 어색했다. 30분쯤 달린 뒤 휴게소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니 헝그리 잭스가 보였다. 아침을 먹지 못해 그저 간판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 혼자 온 여성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저 너무 배고픈데 햄버거 먹기엔 시간이 많이 촉박하겠죠?”
“저도 그런데… 가이드님께 여쭤볼까요?”
가이드님이 아직 시간 있으니 천천히 먹어도 괜찮다고 하셨다. 우리는 키오스크에서 버거 세트를 주문한 뒤 테이블에 앉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정민 누나는 28세로, 오랜 기간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다 지쳐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호주에 왔다고 했다.
그때 혼자 식사하던 지헌 누나가 보여 먼저 인사를 건넸다.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니, 누나는 브리즈번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지낸 지 2년째라고 했다. 지금은 식당에서 일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옐로우 스프링스라는 마을의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워홀러를 처음 만나서인지, 궁금한 게 너무 많아 아이처럼 이것저것 쉬지 않고 물어봤다.
“그러면 2년 넘게 한국에 못 가신 거예요?”
“네… 드디어 10월에 부모님을 뵈러 한국에 돌아가요”
“한국 가면 제일 먼저 어떤 음식을 드시고 싶으세요?”
“(잠시 고민하시더니) 음... 잔치국수가 가장 생각나요”
가이드님은 이어서 호주로 신혼여행을 온 부부를 소개해주셨다. 신랑 민기 님과 신부 수진 님은 케언즈에 아는 동생이 있어 인사도 할 겸 호주를 신혼여행지로 선택했다고 했다. 잠시 뒤 우리는 다시 차량에 올라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론 비치로 향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맑았던 하늘은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고, 이내 부슬부슬 가랑비가 떨어졌다.
비가 그친 뒤 도착한 론 비치는 바다가 놀라울 만큼 투명하고 파랬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해변은 한산했고, 우리는 강아지와 산책을 즐기던 견주를 멀리서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해변을 둘러보다 보니 뒤편에 부부 두 분이 계셨고, 여행의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기시면 좋겠다는 마음에 먼저 다가가 사진을 찍어드렸다.
다음으로 우리는 12사도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전망대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돌계단을 따라 정상에 오르자, 눈을 제대로 뜨기 어려울 만큼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 모두가 사진 찍기를 포기한 듯 보였지만, 가이드님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사진은 꼭 남겨야 한다며 한 명씩 차례로 찍어주셨다. 그러던 중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 가이드님이 쓰고 있던 모자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깜짝 놀란 가이드님은 소리를 지르며 모자를 쫓아 달렸고, 그 모습을 본 우리는 동시에 크게 웃고 말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차량에 올라타니, 거센 바람 탓에 모두 머리카락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가이드님은 우리를 어느 한 오두막 카페로 데려갔다. 그리고 가방에서 고추장과 참기름을 꺼내며 “여기서 퀴노아 라이스를 파니까 각자 하나씩 골라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자”라고 하셨다. 잠시 후, 직원이 커다란 양푼과 김치를 가져오는 걸 보니 투어 업체와 미리 협약을 맺은 듯했다.
처음 보는 퀴노아의 생김새에 ‘이걸로 비빔밥 맛이 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양푼에 퀴노아 다섯 그릇을 담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듬뿍 넣은 뒤 김치까지 함께 비비자, 어느새 익숙한 고향의 향기가 스멀스멀 퍼져 나왔다.
“진짜 한국에 온 것 같아요.”
“와, 냄새 장난 아니다”
숟가락에 크게 한 입 떠 넣자 고소한 참기름과 매콤한 고추장의 풍미가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퀴노아에 섞인 밥알이 한국 쌀과는 달라 전형적인 비빔밥 맛과는 조금 달랐지만, 참기름과 고추장이 그 맛을 잘 잡아주었다. 다들 양푼에서 비빔밥을 자기 그릇에 덜어가는 모습을 보니 마치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커다란 그릇에 빙수를 만들어 함께 퍼먹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 보니 울타리 안에서는 캥거루가 느긋하게 앉아 있었고, 에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작새들은 화려한 꼬리깃을 흔들며 자유롭게 주변을 거닐고 있었다. 가이드님은 이곳의 수익 일부가 구조된 동물들을 돌보는데 쓰인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 말을 들으니 여기서 쓴 밥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 뒤로 레이저백과 아일랜드 아치웨이 등 여러 장소를 둘러봤지먼, 우중충한 날씨와 거센 바람 탓에 크게 감흥이 없었다. 모두가 지쳐 있을 무렵, 민기 님이 가져오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한 사람씩 사진을 찍어주셨다. 원하는 컷을 골라 바로 인화해 주셨는데, 모두가 사진을 받는 순간 분위기가 한층 살아나기 시작했다.
기나긴 투어를 마치고 시티로 돌아가는 길에 함께하던 부부 두 분이 바로 헤어지기 아쉽다며 뒤풀이를 제안하셨다. 모두 흔쾌히 동의해 차이나타운으로 향했고, 칭다오 맥주와 함께 딤섬과 샤오롱바오를 먹었다. 두 분은 제주도에서 촬영한 야외 스냅사진을 보여주셨는데, 흐린 날씨에도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여 감탄하며 사진을 넘겨보았다.
음식을 여러 가지 시켰지만 양이 조금 적어서인지 두 분이 2차 갈 생각 없냐며, 여기서 먹은 음식값은 본인들이 계산하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한사코 사양했지만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대신 2차는 우리가 계산하겠다고 말씀드리고 한식당으로 갔다. 불판 위에 삼겹살을 올린 뒤 지헌 누나가 기가 막히게 말아 주신 소맥을 마시며 김치찌개와 해물파전을 먹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랑 함께 밥 먹는 게 너무 재밌어요. 20대 때는 매일 일만 해서 여행을 많이 못 다닌 게 후회돼요.”
부부 두 분은 웃고 있었지만 씁쓸해 보였다. 신부님은 응급실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제 누나도 치과위생사라고, 그래서 간호사가 얼마나 힘든 직업인 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간호사 한 명이 돌봐야 하는 환자 수가 너무 많아요.”
“태움 문제도 여전히 심각해요.”
“정말 별것도 아닌 이유로 민원 넣는 사람들도 많아요.”
신부님은 덤덤하게 이야기했지만 그 말에 담긴 무게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문득 김수련 작가의 『밑바닥에서』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7년간 간호사로 일하며 겪은 현실을 기록한 책이었는데, 그 책 속 장면들이 신부님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참 슬펐다.
식사를 마친 뒤 계산하려고 카드를 꺼내자 부부 두 분이 1인분 값만이라도 내고 싶다고 하셨다. 우리는 더 이상 신세를 질 수 없다며 거듭 사양했지만, 두 분은 돈은 다시 벌면 된다며 오늘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다고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