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많은 방들 중에 이 방에 걸렸을까

낯선 남자가 내 침대에 누워 있었다

by 공진구

트램을 타고 호스텔에 도착하니 내 침대에 모르는 남자가 누워 있었다. 당황한 채 그대로 서 있는데, 내가 들어온 기척을 느꼈는지 눈이 마주쳤다.


"네 자리인 줄 몰랐어. 정말 미안해. “


보란 듯이 내 침대 위에 짐이 놓여 있는데도 몰랐다고 말하는 그의 태도에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괜히 서로 얼굴 붉히기 싫어 애써 괜찮다고 웃어넘겼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그가 계속 번역기 음성으로 말을 걸어왔다.


"저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가정폭력 때문에 불우한 가정사를 보냈습니다.


갑자기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위로의 말을 건네자 그는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며 느닷없이 우리는 형제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늦은 시간이라 불을 끄고 자려는데, 어디선가 라이터를 딸깍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그는 이불로 침대를 가린 채 풍선을 들고 무언가를 흡입하고 있었다.


내가 뒤척이며 몸을 일으키자, 그가 소리를 들었는지 풍선 흡입을 멈추더니 번역기 음성으로 말을 걸어왔다.


"친구, 내가 돈이 없는데 55달러를 빌려줄 수 있어? 내일 갚을게."


나는 단호하게 돈이 없다고 말한 뒤, 다음 날 리셉션 직원에게 방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직원이 이유를 묻기에 호주 남자가 호스텔에서 흡연을 했다고 설명하자, 직원은 곧바로 다른 방으로 바꿔주었다. 새로운 방에는 프랑스에서 온 루시와 카밀이 있었고, 두 사람은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기 호스텔에 온 지는 꽤 됐는데 어떤 남자가 흡연을 해서 방을 바꿨어요. “

"헐, 그 남자 정말 이상하네요."


카밀은 워킹홀리데이를 하러 호주에 왔고, 일을 구하기 전까지 잠시 호스텔에서 지낼 계획이라고 했다. 루시는 멜버른에 있다가 며칠 뒤 가족들을 만나러 누사 비치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카말은 오늘 시장에서 1달러짜리 미니 거울과 20달러짜리 중고 나이키 신발을 샀다고 자랑했고, 그 덕분에 우리는 금세 대화를 트게 되었다.


루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말을 듣자 서울에 가본 적이 있다고 경복궁에서 찍은 사진과 아리랑 공연 영상을 보여주었다. 서울이 정말 아름다웠다며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다른 도시도 방문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전 08화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 만난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