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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카 맞네, 토요타 GR86 시승기

접근 가능한, 내연기관 시대의 마지막 순수 스포츠카

토요타 GR86 시승기입니다. 원래 계획은, 3일쯤 빌려 타면서 강원도 산 길 등등을 가볼까 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익숙한 길에서 느껴봐야겠더군요.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리지요.


‘86’, 하치로쿠라는 이름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알려졌지요. 만화와 애니메이션 <이니셜D>를 통해 전 세계에 드리프트와 경량 스포츠카에 대한 열망을 다시 불러왔으니까요.


여기에는 저도 포함됩니다. 티뷰론 스페셜로 앞바퀴굴림 스포츠 드라이빙을 한참 즐기던 저에게 경량 후륜구동에 대한 미련을 갖게 만들었던, 그래서 포니2를 사게 했던 원인이 되었으니까요. 우리나라의 보이/걸 그룹이 세계에 우리나라를 알린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네요. 좋아하고, 열망하며, 되고 싶고 닮고 싶은 것이니까요.

외관은 평범(?) 하게 보이는데요, 실물은 조금 더 멋집니다. 수평대향 엔진 덕에 후드부터 차 전체가 매우 낮습니다. 전고 1,310mm는, 아반떼N의 1,415mm와 비교해도 10cm 이상 낮습니다. 시트 포지션도 당연히 더 낮아집니다.

인테리어는 좋게 말해 심플한데, 사실 투박하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나마 시승차가 4,630만 원인 프리미엄 모델이라 계기판 위, 도어 위와 시트 등에 스웨이드 재질이 더해졌습니다. 사실 큰 차이 없습니다.

실내에서는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공존합니다. 운전대 왼쪽 아래, 헤드라이트 높이 조절 및 트렁크 스위치 부분이 튀어나와 있는데 이게 내릴 때 오른쪽 무릎이 부딪칩니다. 결국 바깥쪽 내장재가 툭 떨어지더군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건 거기 생긴 흠집을 봐도 알 수 있지요. 반면 오른쪽 센터콘솔 옆에는 얇은 패드가 있어 코너링 중 오른발을 고정하기 좋습니다.

기능도 그렇습니다. 후방 카메라와 후측방 경고 기능, 애플 카플레이 등은 매우 반갑더군요. 차가 낮고 뒤쪽 시야 확보가 어려운 차에 도움이 되니까요. 또 어설픈 내비게이션보다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 등을 쓰는 게 낫습니다. 근데 스크린 해상도가 딱 5년 전 수준인 건 아쉽더군요.


에… 미리 아쉬운 건 다 이야기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사심 가득한 칭찬들입니다.

수입 승용차 중, 아니 국산차를 포함해도 ‘6단 수동변속기’만 달려 팔리는 차는 유일할 것 같네요. 2.4L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은 241마력을 내고 최대토크는 25.5kg.fm입니다.


이 숫자가 전혀 부족하다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론 200km/h 넘어 달릴 때의 가속 등은 느립니다. 그런데 이미 저 속도가 되기 전에 심장의 두근거림을 감당하기 어려워집니다. 소리와 진동,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거든요.

엔진은 4천rpm을 넘어가며 사운드와 출력이 달라집니다. 기어 레버 뒤에 있는, 트랙 모드 버튼을 누르면 전자식 계기판이 바뀌는 데 오렌지색인 5천~7천500rpm 영역은 과격한 스포츠카가 됩니다. 5단까지 짧은 기어비 덕에, 공차중량 1285kg의 가벼운 무게 덕에 액셀 페달 온오프에 예리하게 가속하고 감속합니다. 코너에서도 오른발로 차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그 아래는? 의외로 얌전하고 적당한 저속 토크로 시내 달리기에 적당합니다. 5단 넣고 가다가 속도가 30km/h까지 떨어졌을 때, 변속을 하지 않고 액셀 페달을 밟아도 뿌듯하게 가속합니다. 자주 변속하지 않아도 되니 일상 사용이 더 편해집니다.


사진에서 보이듯 수평대향 엔진이 낮은 것은 당연한데, 의외로 앞 댐퍼 마운트보다 블록이 앞쪽에 있더군요. 운전자가 탄 상태에서 무게 배분과 적당한 실내 공간을 확보하려는 배치 아닌가 싶네요.


멀리 가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한계에 가까운 달리기를 하려면 ‘아는 길’, 그러니까 홈코스를 달려야 하거든요. 그래서 갔던 곳이 팔당대교~양수리 구간입니다. 운전면허를 딴 이후 매일 밤 달리던 길입니다. 최근에 포르쉐 마칸 GTS 시승회도 했지요.

지금까지 여기서 탔던 차 중에 가장 날렵하게, 즐겁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액셀 페달 온오프와 스티어링 휠의 꺾는 정도를 맞춰 가며 점점 속도를 높이면, 한계가 어디인지 트랙을 가고 싶은 생각이 절실하더군요. 215mm 폭인 타이어 등등 때문에 절대 속도가 빠른 차는 많을 것 같은데, 차의 움직임에서 느낄 재미를 넘어설 차는 많지 않을 것 같네요.


구형인 GT86을 오래, 끝까지(?) 탔던 전 오너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여러 부분에서 세련되어졌는데, ‘본질적인 부분은 바뀌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스포츠 드라이빙을 추구한다는 면에서요.


많은 분들이 현대자동차 N과의 차이점을 궁금해하셨는데요, 의외로 ‘순수함’이라는 면에서 GR86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자연흡기 엔진 + 수동 변속기 + 후륜구동이라는 구조에 낮은 무게 중심으로 기본 한계가 높은 달리기 성능을 보여주니까요. 반면 현대자동차의 N 모델들은 최신 기술(터보 엔진, e-LSD, rev 매칭 등)로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만들어진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이런 접근은 더 많은 사람이 고성능을 즐길 수 있다는 면에서 장점이 있지요.

GR86은 수입 물량이 적은 지 대기가 꽤 길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신형을 계약해 놓고 구형을 중고로 하나 들여 트랙을 다니다가, 새 차로 바꾸면 딱이겠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컨버터블이 아니라 쿠페라는 점 하나가 마지막 단점이네요.


재밌네요. 4천600만 원이 작은 돈은 아닙니다만 유일하다는 면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차를 아직 만들고 있다는, 혹은 마지막으로 문 닫고 마무리하는 회사가 토요타라는 것은 아쉬움과 감사함이 공존합니다. 더 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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